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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선 봉양리의 전국 최대 최고령 뽕나무  
조회 : 4,422, 추천 : 521



종   목 : 강원도기념물 7호
명   칭 : 봉양리뽕나무 (鳳陽里뽕나무)
분   류 : 식물
수   량 : 1주
지정일 : 1971.12.16
소재지 : 강원 정선군 정선읍 봉양리 217-1
소유자 : 사유
관리자 : 고광숙

정선은 두 가지 이유로 꼭 가보고 싶었던 고장이다. 첫 째는 20여 년 전 처절하리만큼 비장하게 내게 다가왔던 정선아리랑의 발상지가 어떤 곳일까 하는 점 때문이고 두 번째는 전국 최대이자 최고령의 뽕나무를 보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대구에서는 당일치기가 어렵기 때문에 미루고 있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는 행운이 찾아왔다. 강릉시의 제일강산강릉21실천협의회의 강남일 사무국장이 대구시의 가로수조성사례를 발표해 주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기 때문이다.

쾌히 승낙했다. 휴가를 겸해 이왕이면 가족과 함께 가기로 했다. 하루 전 날 중앙고속도로를 타고 단양으로 해서 영월로 향했다. 장릉과 청령포는 이미 가본 곳이지만 아내와 은정이는 보지 않는 곳이고 강릉 가는 길목이기 때문에 먼저 둘러보기로 했다. 차창으로 펼쳐지는 주변경관이 좋아 참 잘 선택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아내 역시 좋아서 어쩔 줄 모른다. 그러나 지도로 보는 것과 달리 숙소로 정한 주문진까지는 길도 멀고 높은 재가 많아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늦은 밤 주문진항에 짐을 풀었다.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와 달리 흐리기만 했다. 숙소로 들어가 밤안개로 가득한 포구를 내려다보면서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선창에 가서 갓 건저올린 오징어와 곰치를 사서 인근식당에서 찌고 국을 끓여 아침식사를 했다.

강릉시 의회 임승빈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발표하기 전에 시내와 주요 가로(街路)를 한번 둘러보고 싶다고 했더니 가로수 담장자와 섭외가 되어 시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시청에 도착해 나는 산림녹지과 백운종님과 현장을 둘러보기 위해 떠나고, 아내는 정선으로 출발했다. 마치는 데로 그곳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토론이 길어지면서 예정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서둘러 터미널에 도착해 정선행 시외버스를 탔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고 유명한 정선장도 파장이었다. 곤드레나물밥으로 저녁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 아침 잠자리에서 일어나 시내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안개가 잔뜩 낀 정선은 선경 같았다. 그렇게 보고 싶어 했던 뽕나무(강원도지방기념물 제7호)는 읍사무소 바로 옆에 있었다. 셔터를 눌렀으나 일출전이라 그런지 거부 반응이 일어났다. 해장국으로 요기를 하고 해가 뜬 후 다시 촬영했다.

이곳의 안내문도 부실하기는 다른 곳의 문화재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봉양리 뽕나무’의 유례에 대해서는 수령이 600년으로 제주고씨(濟州髙氏) 중시조가 중앙에서 관직을 버리고 낙향 할 때 심은 나무라고도 하고, 또한 고려시대 이지역의 지명이 상마십리(桑麻十里)라고 불려 진 점으로 보아 그때 자라던 나무 중 일부 살아남은 나무라고도 했다.

하도 오래된데 비해 기록도 없으니 뭉뚱그려 이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나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어느 정도 근사한 내용이어야 한다. 특히 아직도 후손들이 건재하고 또한 시, 군마다 학예사라는 전문직들이 있어 마음만 먹으면 검증이 가능한데도 말로 떠드는 것과 달리 실제로는 지역문화재에 대해 무관심하다.

혹시나 싶어 군(郡)에 전화를 걸어 중시조가 누구이며 생몰년(生沒年)은 언제며, 본관지가 제주인데 왜 이곳으로 낙향했는지, 혹 남긴 문집은 없는지 물었으나 몇 사람을 바꾼 끝에 겨우 얻어 낸 대답은 심은 이가 고순창이라는 것과 현존하는 후손으로 고종헌이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뿐이었다. 대구에 도착 다음날 후손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더니 출타중이라 집에 들어가면 곧 답하겠다고 했다. 나는 이왕 내친 김에 도서관으로 가서 제주고씨 대동보를 찾았다.


뽕나무를 심었다는 고순창(髙順昌)은 제주 고씨 중시조 성주공 고말로(髙末老)의 14세손으로 어릴 때 이름은 순철(順哲)이었으며 조선초기의 문신이었다. 1375년 고려 우왕 원년에 태어나 선초 진사시험에 합격하여 집의(執義)를 거쳐 호조참판을 역임했다. 1455년 세조가 단종을 폐위하고 왕위에 오르자 공은 이 사실에 분개하여 가족을 데리고 형 순성(順成)이 은거하고 있던 정선으로 내려와 속세를 등진 채 청아한 생활을 하다가 1457년(세조 3) 향년 83세로 돌아가신 분이다.


그런데 이글에서 생기는 문제는 뽕나무를 심은 사람이다. 수령이 600년이라고 했는데 고순창의 정선 입향은 올해로 만 554년으로 기록보다 46년이나 모자란다. 그런데 비해 예빈록사직장(禮賓錄司直長)을 지낸 형 순성은 1378년(고려 우왕 4) 나라가 어지러워지자 정선으로 내려왔다고 하니 올해로 꼭 631년이 된다. 따라서 심은 사람이 순창이라기보다 형 순성일가능성이 높다. 특히 이 나무가 1971년도에 문화재로 지정된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오후 후손 고종헌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 역시 뽕나무를 심은 사람은 고순창이나 다만 돌아가신 해는 1457년(세조 3)이라고 했다. 대동보가 착오인 것이 분명하다.

군에서 단독으로 수정하기 곤란하다면 문중과 협의를 했으면 한다.

지금 와서 따져 무슨 실익이 있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지만 역사적인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터넷 발췌>

이글을 쓰신분은
1945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상주농잠고등학교, 방송통신대학, 계명대학교 정책대학원을 졸업하고 대구광역시 산림,녹지계장과 임업시험장장을 역임하고  녹지과장으로 퇴임했다.

재직 중 대구수목원을 기획하고 푸른대구가꾸기에 열정을 쏟았다. 저서로는 시집' 며느리밥풀꽃' 산문집 '팔공산을 아십니까' 나의 사랑 나의 자랑 대구' '대구가 자랑스러운 12가지 이유' '푸른 대구 이야기'가 있다.

영남일보사외편집위원, 대구경실련 환경개발센터 자문위원, 대구생명의 숲 지도위원, 대구광역시 문우회장, 대구카톨릭대학교 조경과 겸임교수, 케이비에스 대구방송총국 시청자위원을 지냇으며 계간 문학시대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녹조근정훈장, 홍조근정훈장을 수훈하고 현재는 '달구벌 얼찾는 모임 대표, 대구에스파스 자문위원, 대구광역시 경관자문위원, 도시디자인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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