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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동(髙羲東)선생의 산수도(山水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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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명칭  : 고희동 산수도
국적/시대 : 한국(韓國) / 시대미상(時代未詳)
재      질  : 사직(絲織) / 견(絹)
크      기  : 가로 : 33.3 cm / 세로 : 130.6 cm
작자/필자 : 고희동(髙羲東)
용도/기능 : 문화예술(文化藝術) / 서화(書畵) / 회화(繪畵) / 일반회화(一般繪畵)
참고문헌  : 서강대학교 박물관, 서강대학교 박물관도록, 197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이경성, 한국근대미술연구, 동화출판공사, 1980.
소  장 처  : 학교(學校) / 서강대(서강대)
유물번호  : 서강대(서강대) 154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  

고희동선생은 조선 말에서 현대에 이르기까지 활동한 화가로, 본관은 제주(濟州), 호는 춘곡(春谷)이다. 한말 군수를 지낸 영철(永喆)의 셋째 아들이다.

1903년 한성법어(法語)학교를 졸업, 이듬해 궁내부주사로 들어가 예식관(禮式官) 등을 역임하고, 이 무렵부터 취미로 서화를 시작하여 안중식(安中植)·조석진(趙錫晉)에게 배웠다. 그러나 당시 화단은 중국의 화보(畵譜)를 충실히 임모(臨模:글씨나 그림 따위를 본을 보고 그대로 옮겨 쓰거나 그림)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여기에 환멸을 느낀 선생은 궁내부 시절 외국인들과 접촉으로 대할 수 있었던 서양의 그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909년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양화과(洋畵科)에 입학하면서 본격적인 서양화 수업에 들어갔다. 이것이 한국인으로는 최초의 서양화 제작이 되었다. 5년간의 수업을 마치고 귀국하자 선생은 신미술 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심한다.

당시 서화계의 중진과 대가들을 종용하여 최초의 한국인 서화가들의 모임이자 근대적인 의미의 미술 단체인 서화협회(書畵協會)를 결성하였다(초대회장 안중식, 총무 고희동). 서화협회의 가장 중심적인 활동은 회원 작품전으로, 1921년 중앙고등보통학교 강당에서 제1회 서화협회전이 열렸다. 이것이 대중을 상대로 한 최초의 근대적인 전시회였다. 회원전과 더불어 계몽 사업으로 한국 최초의 미술지인 《서화협회보(書畵協會報)》를 창간하였다. 제1회 조선미술전람회에 《정원에서》라는 제목의 유화 작품을 출품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3회전부터는 조선미술전람회를 거부, 그 뒤 줄곧 서화협회만을 이끌었다.

1939년 일제의 탄압으로 서화협회가 해산되기까지 총무 또는 회장으로 민족진영의 미술가 단합에 정력을 기울였다. 광복이 되자 조선미술건설본부의 위원장으로, 그리고 우익 미술가들의 집결체인 조선미술협회가 창립되자 회장으로 선출되기도 하였다.

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화가로서, 새로운 조형 방법을 후진에게 가르친 미술 교육자로서, 그리고 화단을 형성하고 이끌어나간 미술 행정가로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또한 일본에서 귀국 후 10년 만에 서양화에서 다시 동양화로 전환하여 전통적인 남화(南畵) 산수화법에 서양화의 색채·명암법을 써서 감각적인 새로운 회화를 시도했다.

1949년 서울시문화상을 받았으며, 그가 죽자 예총장(藝總葬)으로 치러졌다. 작품으로 《금강산진주담폭포》 《탐승》 등이 있다.

이 작품은 이러한 방황 속에서 제작된 것이라고 하겠다.

<참고문헌>

서강대학교 박물관, 서강대학교 박물관도록, 1979.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1991.

이경성, 한국근대미술연구, 동화출판공사, 1980.

<문화체육관광부 e-뮤지엄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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