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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희장군의 우국 충정 “어찌 목숨을 아낄소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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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불산 아랫마을인 청호리는 임진왜란 속에서 임금을 안전하게 모신 공로로 호성공신으로 봉군된 고희 장군의 사당인 효충사가 있어 더욱 유명하다. 주말은 아니지만 이곳을 찾는 이들이 꽤 많았다. 하지만 관광객들 대부분이 효충사보다는 그 앞에 지어진 왜관세트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KBS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의 왜군 본영 세트장이 이곳에 세워진 때문이다. 임진왜란 때 나라를 침범한 왜군본영이 나라에 충성한 장군의 사당 앞에 들어선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 효충사의 유래와 고희(髙曦) 장군 유물

충신의 사당답게 효충사 앞에는 홍살문(紅箭門)이 세워져 있다. 홍살문이란 충신, 효자, 열녀들을 표창하여 임금이 그 집이나 마을 앞, 능(陵), 원(園), 묘(廟), 궁전(宮殿), 관아(官衙) 등에 세우도록 한 붉은 문이다. 또한 효충사에는 아주 오래된 군지정 보호수 두 그루가 서있다. 입구 주차장에는 380년된 소나무가 아름드리 자라고 있고, 효충사 경내에 역시 380년된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효충사 서쪽 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축물 두 채가 나온다. 왼쪽은 고희 장군의 영모(인물화)를 모신 영모각이고, 오른쪽 건물은 장군의 위패를 모신 부조묘 사당이다.

임진왜란이 끝나자 조정에서는 공로가 있는 이들을 가려 상을 주는 논공행상을 한다. 선조 37년(1604년) 10월, 조정은 고희 장군에게 호성공신 3등을 책록하고 영성군에 봉했다. 그리고 궁중 화원(화가)에게 영모를 그려 영구히 봉안케 하고 유교서와 공신록을 내렸다.

영모각에 모셔놓은 고희(髙曦) 장군의 영모는 원본이 낡아 그것을 모사해서 걸어놓은 것이다. 특히 유교서와 공신록은 당대의 명필가인 한석봉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고희(髙曦) 장군 가문의 유물 20종 215점과 함께 1982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739호로 지정되어 현재 효충사 영내에 세워진 유물관에 보관중이다.

# 고희(髙曦) 장군의 충정

고희(髙曦)장군이 선전관의 직에 있을 때인 선조 25년(1592) 4월, 임진왜란이 일어나 선조가 의주로 몽진 길에 올랐다는 전갈을 들은 고희는 왕에게 달려가 밤낮으로 어가를 호위했다. 의주로 몽진하는 임금을 업고 강을 건넌 고희(髙曦) 장군에 관한 이야기를 김형주 선생은 이렇게 들려주었다.

“임진강에 다다르니 비는 오고 밤은 어두워졌어요. 임금을 호위하는 벼슬아치들이 거의 다 도망가 버리니 따르는 대신들도 많지 않았겠지요. 임진강을 건너야 하는데, 나룻배가 있어야지. 간신히 배를 구해서 건너는데, 강가에 있는 정자에 불을 질러 환하게 밝힌 뒤 나루까지 선조를 업어서 건넜다는 것이여. 옛날에 임금은 절대로 배를 안 타게 되어 있었다는디, 전란중에 다급하니까 탄 거에요.”

실제로 임금은 배를 타지 않도록했다고 전한다. 정조 임금이 수원에 있는 사도세자의 성묘를 갈 때 동작나루에 있는 배를 모아 배다리를 만들어 건넜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몽진 길에는 뭐니뭐니해도 임금에게 수라를 대접하는 일이 어려웠어요. 그때 장군이 몸소 여러 마을에 가서 수라거리를 구해 온 후, 만일의 불행을 막기 위하여 자신이 먼저 먹어 본 뒤에 왕에게 수라상을 바쳤다고 그래요.”

왕의 행차가 영변에 이르러 동궁인 광해군의 행차와 만나게 되자 왕은 의주로, 동궁은 함경도 쪽으로 각각 나뉘어 피난을 가야 했다. 바로 그 어수선한 틈을 타 왕을 호위하던 많은 장졸들은 젊은 동궁 쪽으로 혹은 다른 곳으로 도망쳐 버리고, 왕의 곁에는 오직 고희(髙曦) 장군과 몇몇 중신, 장졸들만 남았다.

이때 고희(髙曦)장군은 이 광경을 개탄하고 충의에 넘치는 ‘허신사(許身辭)’라는 시를 지었는데, 고희(髙曦) 장군이 남긴 유일한 글이라고 한다. 그 첫 귀절이 “임금이 욕되면 신하는 마땅히 죽어야 하고, 때가 위태로우니 어찌 목숨을 아낄소냐”라는 충정이 담긴 시다.

-부안독립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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