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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광선(髙光善)선생의「현와유고(弦窩遺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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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광선(髙光善)선생의「현와유고(弦窩遺稿)」


1. 작자 약전(略傳)


고광선의 호는 현와(弦窩), 자는 원여(元汝), 본관은 장흥이다. 시조는 고려조 군기감정을 지냈던 고복림이다. 조선조 기묘명현의 한 사람이었던 좌랑을 지낸 하천 고운과 충렬공 고경명의 직계 후손이다. 증조는 고공진, 조부는 고제열이며, 아버지는 호은 고복주, 어머니는 행주 기씨 우진의 딸이다. 철종6년(1855)에 광주 복촌에서 태어났으며, 일제하 1934년 봉산에서 80세 나이로 죽었다.

어려서 매우 총명하고 행동이 비범하여 또래의 아이들과 함부로 섞여 장난하지 않았다 한다. 어렸을 때부터 특별한 독려없이 스스로 경서와 제자서를 읽고 깨쳤다고 전한다. 그가 10살 때 어머니를 여의었는데, 어린 나이임에도 상주로서 상례를 마치 어른처럼 지키고, 어린 두 동생을 어루만져 위로하여, 주변 어른들을 놀라게 하였다. 계모는 김씨였는데 친어머니 이상으로 섬겼다. 부친의 친구들이 광선의 제주를 보고 장차 크게 될 것을 기대하지 않은 자가 없었는데, 때마침 덕암 나도규가 이웃마을 석정리에 와서 강도를 하므로 이곳에 나아가 처음으로 학문을 하였다. 이때 수심, 양성, 정사, 실체로서 배움의 근본을 삼았고, 반성하는 일을 부지런히 하여 중단하지 아니 하였다. 그 후 노사 기정진에게 나아가 지금까지 듣지 못한 바를 듣고서, "도가 여기에 있다"하며 기뻐했다 한다. 그 후로 노사와의 왕래를 계속하여 하늘과 사람의 생명의 근원과 음양의 깨끗하고 더러운 구분을 강구하고 깊이 체험하지 않은 바가 없었다. 일찍이 말하기를, "세상에 참으로 완전히 알지 못함이 있을지라도 학문을 하여 바탕이 진실하고 중후함을 해치지 않으면 군자요, 또한 도의 강명함이 있을지라도 천박하고 가벼움을 면치 못한다면 소인이다"라 하였다. 부친 호은공과 모친 김씨의 상을 당했을 때 침점침괴(枕 寢塊)의 상례를 게을리 하지 않았고, 술과 고기를 먹지 않았으며 날마다 묘소에올라가 성묘하고 통곡하였다고 한다. 갑오동학난이 일어났을 때 소위 식자들도 휩쓸려 좇으며 백성을 유혹하였는데, 고광선은 그 어지러움을 심히 걱정하며 노사 기정진과 서로 성원하여 거동을 바르게 하며 흔들리지 아니함으로써 주변고을이 난리에 휩쓸리지 아니하고 안전할 수 있었다고 행장은 적고 있다.

그는 성품이 조용하고 담백하여 세상과 썩 잘 어울리지 않았다. 을사조약과 경술국치를 당한데 이어 무오년에 고종이 승하하자, 몸은 비록 척박한 시골에 있으나 적과 한 하늘을 이고 살 수 없다는 뜻으로 봉산의 산중으로 들어갔다. 이 곳에서 교유를 끊고 세상을 마치고자 하였으나, 원근의 학도가 책을 들고 막힌 곳을 물으러 운집하므로 선생은 부득이 찾아온 사람을 물리치지 못하고 이에 응하니, 그 가르침을 입은 자가 매우 많았다.

노사의 문하에서 그와 함께 가르침을 받았던 사람들로 오난와, 정일신, 박석음, 오후석, 기춘담, 기송사 등이 있다.

운파 최수화의 만시에는 그의 인생이 이렇게 나타나 있다.



洪鍾一夜遽收音 커다란 종이 하룻밤새 소리를 거두었네

白首餘生淚滿襟 늙으막에 남은 인생 눈물로 옷깃 적셨오.

邪說於今迷世路 지금 그릇된 말이 세상길을 어지럽히는데

從何更見指南針 어디에서 다시금 지남침을 볼 것인가.



2. 한시문 개관(槪觀)



고광선의 한시문은 주로 그의「현와유고」에 실려 있다. 「현와유고」는 16권 책으로 되어 있는 방대한 개인 문집이다. 이 책은 1권에 시 247수가 실려 있는데, 그 중 오언절구가 26수, 오언 율시가 8수, 오언고시가 10수, 칠언절구가 40수, 칠언율시가 79수, 칠언고시 1수, 가인 1수가 실려 있다. 그리고, 서가 442편인데 2권이 152편, 3권에 290편이 실려 있다. 잡저 107편이 4권에 실려 있고, 서 99편이 5권에 실려 있다. 기가 모두 336편인데, 6권에 166편, 7권에 170편이 실려 있다. 8권에는 발 37, 명 4, 찬 5, 사 5, 혼서 1, 상량문 22, 축문 11, 제문 6 등 모두 101편의 글이 실려 있다 .비문 57편이 9권에 실려 있고, 묘갈명이 10권에 49편, 11권에 60편으로 모두 109편이며, 묘지명 5편과 묘표 52편이 12권에 실려 있다.

행장이 64편인데, 14권에 31편이, 15권에 33편이 실려 있다. 16권에는 실적 26편, 전 14편과 그 자신에 대한 행장, 묘지명 등이 부록으로 실려 있다. 이렇게 볼 때, 현재 「현와유고」에 전하는 그의 시문은 시가 247수, 문이 1439으로 도합 1686이 되는 셈이다.

그의 저작이 1686편이나 된다는 것은 그의 문학적 예술성이나 그의 성격을 차치 하고라도 그의 대단한 능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사물과 인생에 대한 순수한 감동과 사색에 비롯된 작품보다는 인간 관계상의 청탁에서 제작된 작품이 월등히 많다. 따라서, 그의 예술에 대한 평가는 좀더 치밀한 감상을 통해 따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지만, 우선 신학문의 물결이 휩쓸던 시기에 학문으로 된 작품을 이만큼 제작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중요성은 충분하다 할 것이다.

그의 시작품에 나타난 내용은 주로 교훈적인 색채가 강하다. 사물을 보고 느낀 정서는 곧 자기에 대한 반성과 타인에 대한 권선 또는 훈계로 전환해 귀결된다. 따라서, 서정적인 성격은 약한 것이 특징인데, 이는 그의 스승 노사로부터의 수신적인 감화 때문이 아닐까 생각된다. 국권 상실의 암울한 시기에 은둔하여 살면서 오직 후학을 기르는 일로 유일한 낙을 삼았던 그의 인생이 그대로 작품의 경향성을 끌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현와유고」는 그의 제자들에 의해 1962년에 간행되었다. 덕은 송재직의 서문과 제자인 월성 최윤환의 발문이 있다. 




3.한시문 발췌 번역(拔萃飜譯)




 聞褒忠祠廟庭竪碑有感  포충사 입비 유감




百載未遑碑 백년토록 비석하나 세우지 못했다가

於今始有之 지금에 비로소 그리하게 되었네.

子孫猶不死 후손이 모두 죽은 것도 아닐진대

正是感傷時 참으로 때로는 마음편치 못했다네




 掩耳洞十詠 엄이동 십영




① 寒泉   한천

掩耳洞中老 엄이동에 사는 노인이

無端日弄波 무단히 날마다 물결을 희롱한다.

雖爲水所辱 물은 비록 욕을 당해도

不害其淸何 어떻게 그 맑음 잃지를 않는가?




② 山月   산월

寂寞夜山齋 적막한 밤 산 속 집

孤吟頻蹴月 외로움에 읊조리며 달을 자꾸 밟지만.

月應不介嫌 달은 싫은 내색 하나없어

自愧尋常發 부끄럼에 늘 그렇듯 자리를 뜬다




③ 芭蕉   파초

堪燐數葉蕉 몇 잎 파초가 안타깝게도

僻處棘林中 가시밭 속 궁벽한 곳에 피어 있다.

愧吾無所似 부끄럽게 나는 본받지 못해

未作橫渠翁 아직도 횡거노인 되지 못했네.*



▒ 상세설명

* 횡거노인은 송의 장재라는 사람의 호. 그의 학문은 역(易을) 종(宗)으로, 중용을 적(的으)로, 예를 체(體로), 맹자를 극(極으)로 삼았음. 후학을 교도할 때, 옛 것을 배우고 역행을 권면했기 때문에, 그 문하에서 많은 학자가 배출되었다함. 그가 관중 즉, 도시 안에서도 이같이 훌륭한 학자로 모범된 생활을 했는데, 작자는 그렇지 못함을 부끄러워 하는 뜻을 담은 노래. 가시밭 속의 파초에서 여염에 처한 횡거선생을 본 것으로 생각된다.



④ 梅花   매화

疎枝寒査月 차가운 달빛에 성긴 가지 살펴보니

能作大明春 따뜻한 봄소식 지어낼 수 있겠다.

愧此塵容客 세속의 이 나그네 반겨 맞는데

反爲剪伐人 도리어 가위들고 잘라 내게 되었네.




⑤ 老松   노송

滿天白雪裏 천지에 가득 흰눈이 덮이었네

藏得獨靑期 감추인 그 속에 노송 홀로 푸르리.

斤斧休相伐 낫이며 도끼도 서로 베지 말자는 건

何曾伍凡枝 어찌 뭇가지와 한 무리랴 싶어서네.



⑥ 碧梧  벽오동

庭前早種意 일찍이 뜰 앞에 벽오동 싶은 뜻은

擬見瑞禽來 상서로운 날새나 깃들까 해서였네.

邈矣高岡外 날새는 저 산 바깥 아득하기만 한데

抵欣霽月開 비 개고 달 떠오니 그것이 오직 좋네.



⑦ 錦城落照  금성낙조

錦峀半殘景 금성산 바위굴 반남은 풍경이

猶能返照明 아직도 노을 속에 되비쳐 오네.

傀吾衰且病 가련하다 이몸은 가련하게 쇠약하고 병들어서

臨履難爲情 바장이며 구경하기 뜻같이 않다네.




⑧ 池蓮  지련

最憐一藕蓮 참으로 가련쿠나 한 줄기 연꽃

曾不汚泥染 일찍이 더러운 흙에 물들지 않았는데

石澗僅存生 돌틈에 겨우겨우 살아 남은 건

恐爲衆卉厭 뭇 꽃들 실어함이 두려워선가.




⑨ 紅桃   홍도

前春培植意 지난 봄에 심어서 길렀던 뜻은

竊欲侈吾軒 내 집 한번 남몰래 꾸며보자 해서였네.

軒侈還爲辱 집 치장 도리어 욕이 된다면

不如早晦根 일찌감치 뿌리가 마르니만 못하리.



⑩ 野霞   노을

晩起掩疎箔 날 저물자 엷은 금박 일어나네

高山盡沒霞 높은 산에 노을이 걷히는 것을.

爲山雖可愧 산은 비록 부끄럽다 말할지라도

霞盡山更佳 노을 걷힌 산도 또한 아름답다네.




 掩耳齋原韻   엄이재 원운




結盧掩耳洞 엄이동 골짜기에 집지어 놓으니

日與洞雲隣 날마다 골짜기는 구름과 이웃하오.

明月寒泉夜 밤이면 밝은 달 샘물에 뜨고

流霞孤島晨 새벽이면 외로운 섬에 노을 흐르네.*

巖間垂死跡 바위 틈에 죽은 자취 드리우는데

世外一遺民 나라 잃고 세상 등진 백성의 뜻.

不道腥塵語 더러운 세상사 말하지 마오

山光太古春 산빛은 아득히 먼 옛 봄이라오.



▒ 상세설명

* 엄이동 골짜기를 외로운 섬으로 비유 함




謹次益齋李先生影幀韻  익재 선생 영정*




嗟我先生道 아, 우리 선생이 가신 길은

海東百世春 해동에 백세토록 영원하도다.

五朝 宰積 다섯 왕 총재로서 이룬 업적**

十分事功神 그 공 귀신을 섬겨도 충분하리.

模月難模色 달은 본떠도 색깔은 본뜨기 어려우리

畵龍只畵身 용을 그린 것인지 단지 몸을 그린 것인지.

徒將遺像得 유상을 그리려는 사람들아

敢告後來人 나중 사람에게는 감히 알려 주게나.


▒ 상세설명

* 익재는 고려 충렬왕 13년(1287)부터 고려 공민왕 16년(1367) 사이의 이제현의 호이다. 시인이요, 성학자였다. 1301년 나이 15세로 성균시에서 장원하고, 또 병과에 급제, 벼슬길에 나아갔다. 충숙왕10년(1323) 유청신, 오잠 등이 원나라에 글을 올려 고려 400년의 토대가 이로써 무너진다고 간곡히 호소하여 이 문제를 철회케 하였다.

여러 가지 고위 벼슬을 두루 지내면서 국가에 많은 공을 세웠으며, 「익재난고」라는 문집을 남겨 후세의 시문과 역사의 연구에 많은 기여를 하였다. 특히 여기서 노래하고 있는 익재의 영정은 그가 충선왕때 원나라 연경에 갔을 때 진감여가 그린 것으로, 원나라의 석학이었던 탕병룡이 찬을 써서 그 필적과 그림이 국보로 지적되어 현대 국립미술관에 보관되어 있다.

** 총재( 宰)는 본래 주대 육관의 우두머리였는데, 후세에는 이부상서의 별칭으로 써 온 관작 명칭이다.



 夏日述  어느 여름 날의 생각



庭畔小蕉葉 뜰 안에 남새밭 작은 파초는

大於凡草木 뭇푸나무보다 그 일이 크다네.

微風輒作時 문득 작은 바람이라도 불어 온다면

不耐愁飜覆 못견디고 뒤집힐까 걱정이라오.

葉大所勝何 잎이 크니 어찌 이길 수가 있겠오

反爲凡卉 도리어 뭇푸나무에 부끄러우니

人生亦若斯 인생살이 또한 이와 같아서

外辱由名速 이름 얻자 서두르다 외욕을 당한다오.



 入山 題 산에 들어 몇자 적다.



身如靑翰鳥 몸이란 청한조와 같은 것이라서*

開口信天飛 입을 열면 믿음이 날아가 버린다.

河物自天賜 무엇을 하늘에서 받았을까

至今老且肥 지금 늙고 또 살이 찐 건.

又如紇峀雀 또한 홀수작 같도다**

白雪呼寒歸 백설이 추위를 불러 들이니.

早謂前冬死 지난 겨울 죽었단 말 벌써 나오네

開春帶日暉 봄이 되려면 햇무리가 생기고.

試看烏鳥隊 까마귀 떼를 지어 날아다니며

啄 而威 왁자지껄 위세함을 보게 되겠지.

富貴皆時有 부귀는 다 때가 있으니

非時榮亦非 때아닌 영화는 또한 잘못된 것.

飢寒濱死命 추위나 주림에 죽는 것이 천명이면

反以爲榮巍 오히려 영화라고 할 수도 있으리…….


▒ 상세설명

*청한조는 새이름이다. 제호라고도 하는데 물 속에 들어가 고기를 잡아먹는다.

** 홀수작도 새이름인 듯한데 확인할 수 없다.



 戒兒曹  아이들을 경계함




古苑有雙木 옛날부터 뜰에 나무가 둘 있었다.

今朝盡伐之 오늘 아침 그들을 모두 잘라서

其一犧樽作 하나는 제사용 잔을 만드니

靑黃文彩奇 푸르고 누른 무늬 훌륭하였다.

其一委諸壑 하나는 구렁에 되는 대로 두었더니

汚泥朽敗宜 더러운 흙 속에서 썩는게 당연하지.

均是一般木 이들은 둘 다 한 가지 나무거늘

尊卑隋作爲 만듦에 따라서 귀해지고 천해졌다.

奚獨木而己 어찌 유독 나무뿐이랴.

人生亦若斯 인생도 또한 이와 같아서

異日貴與賤 다른 날에 귀하고 천해지는 건

在於各所思 각자가 생각기에 달려 있다.

刑爾郡兒輩 여러 아이들에게 경계할 뿐이니

勉於念在玆 생각을 이에 두고 근면할 지니라.



 省蘆沙先生墓遺感 노사 선생의 묘 앞에서



一聲慟哭銷靑山 한바탕 통곡소리 청산을 막네

感淚徒傷咫尺間 지척에 제자들이 느껴 우는데.

若使九原靈不味 구천의 영혼이 어둡지 않으시면

應知小子此時還 소자가 이때 오는 줄 응당 아시겠지.

音容永邈此江山 그 목소리 그 모습이 영원이 아득하나

懷思莫禁方寸間 생각이며 마음은 몇 치 사이네.

永失平生依仰地 평생토록 의지할 곳 영영 잃었나

徊徨半日未堪還 한 나절을 방황하여 돌아가지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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