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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서흥(髙瑞興)선생 공덕비(功德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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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치 ; 제주시 건입동사무소 동쪽 20여m 지점
유형 ; 마애명(기타 비석, 공덕비)
시대 ; 조선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에 있는 조선 말기 제주목사를 지냈던 고서흥(髙瑞興)선생의 공덕비(功德碑).

제주시 건입동 기상청 북쪽에 있는 바위 언덕길을 속칭 ‘공덕동산’이라고 한다. 고서흥선생 공덕비는 이 바위 언덕길을 뚫은 고서흥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조선 말기 당시 건입포 주민들은 동문 밖으로 나가려면 북문과 동문을 거쳐 우회해야 했기 때문에 이동이 아주 불편하였다.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동문 밖으로 나가기 위해 바위 언덕을 타고 넘어 다니곤 했다. 자칫 실수하면 낭떠러지에 떨어질 위험이 많았고, 밤에는 건너다닐 수도 없었다.

이때 경민장(警民長)이었던 고서흥선생은 일 년 동안 농사를 지어 모은 조 300석을 내놓고 석수와 인부를 사서 도로 개척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암반을 부수어 길을 뚫다 보니 여러 차례 난관에 봉착했다.

그래도 끝까지 공사를 추진하여 길을 개척하는 데 성공했다. 동리 사람들은 고서흥선생의 이 같은 공덕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바위 언덕을 ‘공덕동산’이라고 불렀으며, 고서흥선생이 뚫어놓은 길목에 비문을 새겨 고서흥의 은혜를 기렸다.

비신(碑身)의 너비는 47㎝, 높이는 75㎝이다.

자연 암석을 다듬고 새긴 비문을 보면 앞쪽 가운데에 “고서흥(髙瑞興)”이라고 이름을 새기고, 그 아래쪽에 조금 작은 글씨로 두 줄로 “연출사재 공석치로(捐出私財 攻石治路)”라 새겼으며, 앞쪽 오른편 구석에 “정축이월일(丁丑二月日)”이라 되어 있다.

지금은 고서흥선생 공덕비가 있는 곳 위로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이 나 있고, 고서흥선생 공덕비 주변에 철제 울타리가 처져 있으며 주위에 깎은 돌을 깔아 단장하였다. 옆 벽면에는 안내문과 함께 ‘건입리민인등상(健入里民人等狀)’이라는 제목의 옛 문서를 돌에 새겨 붙여놓았다.

▒참고문헌
*홍순만, 『비』(제주신문, 1978)
*『제주시 비석일람』(제주시,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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