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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진왜란(壬辰倭亂)때 관군과 의병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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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역사적으로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아, 고구려와 백제유민(遺民)의 국가부흥을 위한 의병투쟁에서, 가까이는 중국에서 투쟁한  항일의병에 이르기까지 많은 의병운동이 있었다. 특히 임진왜란(1592) 때와 1895년(고종 32)의 을미사변(乙未事變) 이후 1910년 국권피탈 전후의 의병운동이 가장 활발하였다.  

조선 선조 초  일본은 오랫동안의 혼란기를 수습하고 전국시대를 통해 얻어진 조직화된 군사력으로서 조선을 침공하게 되었고 이에 거의  무방비상태에 있던 조선의 관군은 패전을 거듭하여 서울까지 함락되었다. 일본군이 주요도로를 따라 서울로 진격하고 후방의  요지에만 수비군을 주둔시킴으로써 하삼도(下三道)의 대부분 지역에는 일본군의 세력이 미치지 못하였다. 따라서  이 지역은 의병의 온상지가 되었다.

경상도 의령(宜寧)에서는 유생(儒生) 곽재우(郭再祐)가 사재를 털어 1592년 4월 24일 군사 1,000여 명을  모아 낙동강을 따라 왕래하면서 왜군을 무찔러 경상 우도의 여러 성을 수복하였다. 합천(陜川)의 정인홍(鄭仁弘), 고령(高靈)의 김면(金沔)은 동지인 박성(朴惺)·곽준(郭奏)·곽단(郭恁)·권양(權瀁)·박이장(朴而章) 등과 같이 향병(鄕兵)을 모아전 첨사(僉使) 손인갑(孫仁甲)을 장수로 하여 왜적을 무찔렀다.

수영군관(水營軍官)이었던 권응수(權應銖)는 신녕(新寧)에서 영천군수(永川郡守) 김윤국(金潤國) 등의 관군과 합세하여 싸웠으며, 그는 정대임(鄭大任)·정세아(鄭世雅)·조성(曺誠)·신회(申誨) 등과 함께 신녕·안동 등 경상좌도 지역을 모두 수복하였다.  

전라도 광주에서는 전 부사(府使) 고경명(髙敬命)이 옥과(玉果)에서 일어난 유팽로(柳彭老)와 함께 6,000여 명의 의병을 일으켰으며 남원(南原)의 안영(安瑛)·양대박(梁大撲)도 전 부사였던 나주의 김천일(金天鎰) 등과 의병을 일으켜 고경명(髙敬命)과 합세하였다.

한편 승려들의 활동으로서 경상도에서는 원오(原悟)가 승군을 모아 활약했으며 묘향산에서는 휴정(休靜)이 승군 1,000여 명을 모아 각도의 승려들도 궐기할 것을  호소함에 관동 승려 유정(惟政), 호남 승려 처영(處英:雷默)도 각각 승병을 모아 활약하였다. 호서의 양성(陽城)에서는 홍언수(洪彦秀) 부자가 의병을 일으켜 경기와 이웃한 충청도 지역을  방어함으로써 왜적의 이 일대 접근을 저지하였다.

충청도 옥천(沃川)에서는 전 제독관(提督官) 조헌(趙憲)이 홍주(洪州)에서 의병을 모은 신난수(申蘭秀)·장덕개(張德蓋)·처영 등과 함께 청주를 수복하고 금산성(錦山城)에서 왜적과 대치하여 항전하다가 700여 명이 전원  전사하였다(七百義塚).

이 외에도 강동지역에는 전  의금부도사(義禁莩事)였던 조호익(曺好益)이, 함창(咸昌)의 정경세(鄭經世), 청주의 이봉(李逢), 무계(茂溪)에서 김준민(金俊民)이 각각 궐기했으며 충청도지역에서는 박춘무(朴春茂), 보성(寶城)의 임계영(任啓英), 경주의 김호(金虎)·주사호(朱士豪)·최진립(崔震立) 등이 의병을 일으켰다.

황해도 지역은 장응기(張應祺)·이정암(李廷?)·박덕윤(朴德胤)·조광정(趙光庭) 등이, 영동(永同)에서 한명윤(韓明胤)과 전라우의병장(全羅右義兵將)이었던 최경회(崔慶會)가 봉기했으며 예안출신 유종개(柳宗介)와 경기의 우성전(禹性傳) 등이 봉기하여 관군 이상으로 활약하였다.

함경도 지역은  북평사(北評事) 정문부(鄭文孚)가 경성(鏡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국경인(鞠敬仁) 등의 반란을 평정하여 회령(會寧)을 수복하고 길주(吉州)·명천(明川) 등지에서 왜적과 싸워 크게 이겼다.

의병의  활동이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을 지휘하는 의병장의 거의 대다수가 전직 관리·유학자 등으로서 사회적 지위와 함께  백성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명문거족이었기 때문이다.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은 그 전적이 화려하였으나 대개  계통성이 있고 조직적이며 조총이라는 신형 무기를 가진 왜적에 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 원인은 장졸(將卒) 모두가 군사지식·훈련 및 장비 등의 부족과 관군과 사이에  조직적인 지휘계통이 확립되지 못한 데 있었다. 이러한 의병운동이 대중적 기반 위에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본격적으로  전개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05년 11월 을사조약 체결의 소식이 전해지자 살왜(殺倭)를 기치로 한 의병운동이 경향 각지에서 일어났다.  

제2기 의병운동의 발원지가 되는 곳은 강원도 지역으로서 이곳은 종래 화적·활빈당 등의 활동이 가장 활발하였으며 이들이  의병운동으로 합류함에 따라 1905년 4월부터 재기의 단서를 열어 충북·경기·경북으로 파급되었다.

이 때의 의병장들은  홍산(鴻山)·홍주성의 민종식(閔宗植), 공주의 이세영(李世永)·김덕진(金德鎭), 예산·해미(海美) 지역의 최익현(崔益鉉)·곽한일(郭漢一)·남규진(南奎振), 임실(任實)의 강재천(姜在天), 장성의 기우만(奇宇萬), 광양(光陽)의 백낙구(白樂九), 남원의 양한규(梁漢奎), 영해(寧海)의 신돌석(申乭石), 진보(眞寶)의 이하현(李夏鉉), 안동의 권세연(權世淵)·유시연(柳時淵), 영양(英陽)의 김순현(金淳鉉), 영덕(盈德)의 정환식(鄭煥植)·정용기(鄭鏞基) 부자, 울진(蔚珍)의 김현규(金顯奎) 등이 있다.

2차 의병운동의 특징은 반침략적·반봉건적 성격을  띠며 호남과 충청도 지방의 의병장이 유생출신으로서 대중적인 봉기와 굳게 결합될 수 없는 요인을 지녔다. 영남지방은  평민의병장이었기 때문에 농민대중을 의병부대로 규합하여 이들과 밀착된 가운데 투쟁이 완강하고 기동성을 띰으로써 과감하게  지속할 수 있었다.

1907년 헤이그 밀사사건을 계기로 고종이 강제 퇴위되고 한국 통치권의 대부분을 일본에  의해 수탈되는 정미7조약(丁未七條約)의 체결과 한국군대가 강제로 해산되는 것 등에 자극되어 제3기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이 때의 의병운동은 해산군인들이 의병으로 합류하고 의병대장으로 평민출신이 가담함으로써 국민대중 속으로  파급되었으며 의병운동의 발전에 새로운 전환점을 가져오게 되었다.

1907년 8월 1일 한국군대의 해산식을 거행하기 위해  훈련장에 한국군인들을 소집하였으나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병영사수를 외친 서울의 시위대 제l대대의 대대장 박승환(朴昇煥)의 자결이 계기가 되어 서울시위대의 항전은 시가전으로 번졌고  곧이어 원주진위대(原州鎭衛隊)와 강화분견소에서도 봉기·항전하여 의병 대열로 참가하였다.  

해산을 거부한 시위대 봉기병과 해산병 및 진위대의 봉기병들은 일제의 회유책과 탄압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이 지방  의병부대와 합류하거나 단독 의병부대를 조직하여 애국항전의 대열로 궐기하여 점차 전국적으로 확대되어 항일의병투쟁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한일합병조약이 체결된 1910년 이후부터 이들 의병활동은 지하로 스며들거나 만주·러시아 또는 구미(歐美) 지역으로 망명의 길을 떠나 독립군 또는 광복군으로 연결되어  해외에서의 독립투쟁으로 전개되었다.

-자료출처 : 두산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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