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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전서공파(典書公派) 파조(派祖), 고신걸(髙臣傑) 중시조13세손(世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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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걸(髙臣傑) 중시조13세손(世孫) 전서공파(典書公派) 파조(派祖)


중시조(中始祖) 성주공(星主公) 말로(末老)의 13세손(世孫) 고려 후기 탐라 성주. 1369년(공민왕 18)에 문과에 급제하고 서도부천호(潟副千戶)를 지냈다.


1374년(공민왕 23) 최영(崔瑩)이 탐라에서 일어난 목호(牧胡) 난을 진압하고 떠난 이듬해에 제주 토착민 차현유(車玄有)가 마적(馬賊)의 무리를 이끌고 관아를 불태우고 제주안무사 임완(林完)과 제주목사 박윤청(朴允淸) 및 마축사(馬畜使) 김계생(金桂生) 등을 살해하는 반란을 일으켰다.


이 반란은 최영의 목호의 난 평정 때 살아남은 잔존 세력까지 합세하여 반고려·반명(反明)의 성격을 띠면서 더욱 확대되어 갔다.


이에 고신걸이 왕자 문신보(文臣輔)와 진무(鎭撫) 임언(林彦) 및 천호(千戶) 고덕우(髙德羽) 등과 함께 반란을 진압하였다. 1376년(우왕 2) 왜구 600여 척이 침입해오자 적의 화살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선전하여 적을 대파하였다.


고려 조정은 이를 가상히 여겨 호조전서에 임명하고 홍정(紅鞓)과 표리(表裏) 및 술 등의 하사품을 내렸다. 1384년(우왕 10) 탐라 성주가 되었으며, 1387년(우왕 13) 아들 고봉례를 데리고 우왕을 알현하였다.


  상세설명
홍정(紅鞓) : 붉은빛의 수정.
표리(表裏) : 임금이 신하에게 주던 포상 가운데 새보(璽寶)를 찍은 유서(諭書)와 관복감의 명주나 비단 두 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