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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영곡공파(靈谷公派) 파조(派祖), 고득종(髙得宗) 중시조15세손(世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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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득종(髙得宗)  중시조15세손(世孫), 영곡공파(靈谷公派) 파조(派祖) )


중시조(中始祖) 성주공(星主公) 말로(末老)의 15세손(世孫) 조선 초기의 문신.자는 자부(子傅), 호는 영곡(靈谷). 아버지는 상장군 봉지(鳳智)이다.


1413년(태종 13) 효행이 두터워서 직장(直長)에 천거되었으며, 1414년(태종 14) 알성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대호군(大護軍), 예빈시판관(禮賓寺判官) 등을 지냈다.


1427년(세종 9) 중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고, 1437년(세종 19) 첨지중추원사가 되었다.


1438년(세종 20) 호조참의 재임 중 종마(種馬) 진공사가 되어 명나라에 다녀왔고, 1439년(세종 21) 통신사로 일본왕의 서계(書契)를 가지고 돌아온 후 예조참의, 중추원동지사, 한성부판윤 등을 지냈다.


세종 때 중앙 정부가 제주도에 대한 지배권을 강화해 나가는 상황에서 고득종은 재경 관인으로서 어느 정도 기여하였고, 이는 여러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가 정치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이었다.


고득종이 제주민을 위한 시책을 몇 가지로 정리해 보면
① 제주의 토지 등급을 내려주도록 요청하여 제주인들의 조세 부담을 덜어 주었다.
② 한라산 기슭 4면에 목장을 축조하여 소위 제주도 목장이 10소장으로 나뉘게 되는 시초를 열었다.
③ 참역(站驛) 폐단의 시정하였다.
④ 서울로 올라가 종사하는 제주 출신 자제를 위하여 직료(職料)를 설치하여 그들에 대한 경제적 지원을 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장과 필법이 매우 뛰어났다.


특히 제주목 건물의 하나인 홍화각 현판글씨와 「홍화각기(弘化閣記)」는 1435년(세종 17)에 지은 유명한 문장이며, 그의 사상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이다.


 친필 「몽유도원도찬양칠언장편시(夢遊桃園圖讚揚七言長篇詩)」는 글씨가 예스럽고 아담하며 현재 일본 덴리대학(天理大學)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상훈과 추모] 1460년(세조 6) 원종공신(原從功臣) 3등에 추증되었다. 제주인들로부터 효행이 칭송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주도에 여러 가지 좋은 시책을 행한 데 감동을 받아 제주민들은 그를 부형으로 섬겼다고 한다.


제주목사 이원조(李源祚, 1792~1872)는 제주인들의 건의로 1843년(헌종 9) 영혜사(永惠祠) 동쪽에 향현사(鄕賢祠)를 세우고 위패를 봉안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사후에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상세설명
대호군(大護軍) : 조선시대 5위(衛)에 딸린 무관직. 건공장군(建功將軍) ·보공장군(保功將軍)이라고도 하였다.
서계(書契) :  일본 정부와 주고받던 문서.
참역(站驛) : 교통의 요지에 설치되어 공무상의 연락시 숙박이나 혹은 역마를 제공하며, 사신의 접대 등을 맡던 역관(驛館)을 말함.
직료(職料) : 벼슬아치 관리
홍화각기(弘化閣記) : 제주도에 있는 관아 건물의 건립을 기록한 조선 초기의 판각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