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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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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보(髙龍普) 고려의 환관(宦官)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9:09
조회
96
?∼1362(공민왕 11). 고려의 환관(宦官).

본관은 전주(全州). 일명 용봉(龍鳳)·용복(龍卜). 원나라의 이름은 투만디르(透滿迭兒).

원나라에 들어가 내시(內侍)로서 황제의 총애를 받아 자정원사(資政院使)가 되었다. 내시 박첩목아불화(朴帖木兒不花) 등과 협의, 기자오(奇子敖)의 딸을 순제(順帝)의 제2황후로 승격시키고 측근으로서 권세를 잡고, 본국인 고려에 대해서도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충혜왕은 그의 환심을 사기 위하여 삼중대광완산군(三重大匡完山君)에 봉하였다.

1342년(충혜왕 복위 3) 기황후(妓皇后)의 어머니 이씨(李氏)를 맞으러 고려에 다녀갔으며, 이듬해 10월 순제의 명으로 충혜왕에게 술과 의복을 가지고 왔다가, 다음달 원나라의 사신과 함께 충혜왕을 잡아 원나라에 보내고 순제의 명으로 임시 국사를 정리하였다.

충목왕이 즉위한 뒤 공신의 호를 받았으나 계속하여 원나라를 믿고 횡포를 부렸다. 결국, 어사대의 탄핵으로 금강산으로 추방되었으나 곧 소환되어 영록대부가 되었다.

뒤에 자정원에서 밀려나 고려로 돌아온 뒤로는 기철(奇轍)일파와 결탁하여 횡포를 부리다가 1352년(공민왕 1) 조일신(趙日新)의 난에 가까스로 죽음을 면하였다.

그뒤 승려가 되어 해인사에 있던 중 1362년 2월 왕이 보낸 어사중승(御史中丞) 정지상(鄭之祥)에 의하여 처형되었다.

당시 원나라의 세력을 빙자하여 횡포를 부리던 무리들 중에서 으뜸이었으며, 사재를 들여 비구승 중향(中向)으로 하여금 전주의 보광사(普光寺)를 중창시키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高麗史, 高麗史節要, 韓國系行譜. 〈孫弘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