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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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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효충(髙孝冲) 중시조 6세손(世孫),고려 중기의 문신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9:11
조회
174
중시조 성주공 말로(末老)의 6세손(世孫)

양경공(良敬公) 영신(令臣)의 손자이며 설서좌복야(說書左僕射) 식(湜)의 장남이다.

1124년(인종 2년) 공은 중서시랑 김약온(金若溫),병부시랑 김부식(金富軾)이 주도하는 진사시험에 장원으로 급제하고 출사하여 이부상서(吏部尙書)에 오르게 되었으며 바르고 곧은 성품으로 정사를 처리하였다.

1120년(예종 15년) 공이 국학생(國學生)으로서 당시 예종이 기생 영롱(玲瓏)과 알운(柩雲)이 노래를 잘 부른다 하여 여러 번 상을 내리므로, 이를 비난하는 뜻으로 왕이 팔관회 에서 잡희(雜戱)를 즐기며 여자와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풍자하는「두 계집에 부쳐(感二女詩)」라는 시를 지은것이 죄가 된다하여 중서사인(中書舍人) 정극영(鄭克永)의 밀고로 감옥에 갇히었다.

그러나 보문각대제(寶文閣待制) 호종단 (胡宗旦)의 상소로 곧 풀려나왔으며 그후 대사헌(大司憲) 서거정(徐居正)은 이 사건을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중국의 한퇴지 가 ‘두 마리의 새에 부쳐’라는 시를 지었는데 이 시는 헌종이 어진 신하보다도 새를 더 좋아한 사실을 풍자한 것이다. 이제 고효충(高孝沖)의 시는 한퇴지(한유=字가 退之)가 지은 시와 같은 뜻에서 지은 시이니 왕은 마땅히 잘못을 뉘우치고 행동을 고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그에게 벌을 주고 옥에 가두니 이는 어떤 법에 따른 것인지 모르겠구나 왕의 현명치 못함이 애석 할 따름이다. 다행히 호종단의 상소로 옥사를 면하니 나라에 다행한 일이다』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