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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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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억(髙億) 조선 중기의 효자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0:37
조회
62
청주 출신,양민으로서 효행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였는데, 모친과 이부(異父)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었다. 나이 17세에 형을 대신하여 요동(遼東)의 역(役)에 나갔다. 이때에 봉림대군(鳳林大君, 뒤에 효종임금)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요양에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협상으로 요동에 있던 조선 군사를 돌려보내게 되었다.

고억은 “세자저하와 대군을 두고 떠날 수 없다.”고 사배(辭拜)하였더니, 봉림대군이 “고국에 먼저 돌아가라.”고 역을 면제해 주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모친상을 당하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삼년을 살았다. 그가 어려서 부친상을 당하여 그 정성을 다하지 못한 것을 한탄하더니 모친 묘소에서 삼년간을 더 시묘살이를 하였다.

그 뒤 효종(봉림대군)이 승하한 뒤에 통곡하며 그 슬픔을 가누지 못하였다. 요동에서 역을 면하게 해준 성은(聖恩)때문이었다. 그는 매년 효종임금이 세상을 떠난 날이면 향을 피우고 임금님이 계신 북쪽을 향해 재배(再拜)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고 한다.

1687년(숙종 13) 효행이 가상하여 조정에서 정문(旌門)이 내려졌고, 충청도병마절도사(忠淸道兵馬節度使)였던 이봉상(李鳳祥, 1676~1728)이 글을 지어 정려비(旌閭碑)를 세웠다. 현재 충북 청원군 강외면 사평리에 효자정려비(孝子旌閭碑)가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