ㅁ 제주고씨(濟州髙氏) 시조(始祖) 고을나(髙乙那)왕께서 현(現) 제주도(濟州道)에 탐라국(耽羅國)을 세운 이래 대대로 45세(世) 왕세계(王世系)를 이어왔다.
ㅁ 그 후 서기(西紀) 938년(고려(高麗) 태조(太祖) 21) 탐라국(耽羅國) 고자견(髙自堅)왕의 태자(太子) 제주고씨(濟州髙氏) 중시조(中始祖) 고말로(髙末老)께서 고려(高麗)에 입조(入朝)하여 성주(星主)·왕자작(王子爵)을 제수(除授)한후 서기(西紀) 1402년(태종(太宗) 2) 총제공(摠制公) 고봉례(髙鳳禮)에 이르기까지 16대(代) 464년간(年間) 성주(星主)로서 탐라(耽羅)를 다스려 왔다.
2. 이거(移居)와 분파(分派)
특히 고려초(高麗初)부터 탐라성주(耽羅星主)의 후손(後孫)들이 점차적으로 대륙지방(大陸地方)으로 활발히 진출(進出)하여 경향각지(京鄕各地)에 세거(世居)하면서 높은 벼슬에 오르고 훌륭한 업적(業績)을 쌓는등 많은 역사적(歷史的) 인물(人物)들을 배출하였으니 이로써 제주고씨(濟州髙氏) 가문(家門)은 크게 발전(發展)하고 번성(繁盛)하게 되었다.
※ 성주(星州) 이거(移居)의 내력(來歷) 서기(西紀) 1592년(선조(宣祖) 25년(年))에 임진왜란(壬辰倭亂)이 일어남에 고경명(髙敬命)(제봉(霽峰))은 육십(六十) 노구(老軀)로 호남(湖南)의 의병장(義兵將)이 되어 의병(義兵) 7,000여명을 인솔하여 금산(錦山) 전투에서 격렬히 싸우다가, 두 아들과 같이 전사(戰死)하였다. 그후 익호(謚號)를 충열(忠烈)이라 사익(賜謚 )하였다.
그 왜난(倭亂)으로 인(因)하여 호남(湖南)에서 세거(世居)하는 후손일부(後孫一部)는 각지(各地)로 흩어짐 에 따라 파조(派祖)(장흥백파(長興伯派)) 15세손(世孫) 만담(萬曇)(호 수암(守菴))은 약(約) 300년(年)전에 경남(慶南) 합천(陜川) 삼가(三嘉)에서 성주군(星州郡) 월항면(月恒面) 인촌리(仁村里)로 이거(移居)하여 지금 칠십세대(七十世代)로 번성하였으나 경향각지(京鄕各地)로 분거(分居)하여 현재(現在) 약(約) 30세대 가 세거(世居)하고 있으며, 성주군(星州郡)에 세거(世居)하고 있는 제주고씨(濟州髙氏)를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