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는 치술(치述), 호는 이양재(李養齋)로 만수옹(萬樹翁) 명세(命世)의 후손이다. 아버지가 16년간 병으로 고생하여 친히 아궁이에 불을 때며 사환이나 노비에 시키지 않는 것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았다.
효성으로 추천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이 제수됐다. 문헌공(文憲公) 유후조(柳厚祚)가 행장을 지었다.
▒ 상세설명
*동몽훈도(童蒙訓導) : 조선(朝鮮) 초기(初期)에, 군현(郡縣)에서 설치(設置)한 사학(私學)에서 향교(鄕校)에 들어가기 전의 어린 학동(學童)을 가르치던 유자(儒者). 사맹삭(四孟朔)인 1월ㆍ4월ㆍ7월ㆍ10월의 4회에 걸쳐 등용(登用) 시험(試驗)을 보았으며, 재직(在職) 기간(期間)은 450일로 규정(規定)하였음. 뒤에 '동몽교관(童蒙敎官)'으로 개칭(改稱)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