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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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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髙銀) 시인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0:50
조회
231

1933 ~

본명 고은태(髙銀泰). 전라북도 군산에서 출생하였다. 군산중학교 4학년까지가 공식적인 학력이다. 1952년 20세의 나이로 입산하여 승려가 되었다. 법명은 일초(一超)로 효봉선사의 상좌가 된 이래 10년간 참선과 방랑의 세월을 보내며 시를 써왔다. 조지훈 등의 천거로 1958년 《현대시》에 《폐결핵》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하였다. 1960년 첫 시집 《피안감성(彼岸感性)》을 간행하였고, 1962년 환속하여 시인으로, 어두운 독재시대에 맞서는 재야운동가로서의 험난한 길을 걷게 되었다. 1974년 시집 《문의 마을에 가서》를 출판하며 시인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였다.

그 해부터 자유실천문인협의회, 민주회복국민회의, 민족문학작가회의 등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서 왔다. 1983년 이상화(李相華)와 결혼하였고 20여 년간 지은 시들을 정리하여 《고은 시 전집》1, 2권을 민음사에서 간행하였다. 1986년 《세계의 문학》에 《만인보(萬人譜)》연재를 시작, 그 해 창작과 비평사에서 《만인보》 1, 2, 3권을 간행한 이후, 1988년에 4, 5, 6권, 1990년에 7, 8, 9권을 간행하여, 다음 해 《만인보》로 중앙문화대상을 받았다. 1993년 《백두산》 연작을 완성하였고, 1999년 《머나먼 길》을 출판하였다.

《피안감성》에서 《신언어의 마을》(1967)에 이르는 초기시는 주로 허무와 무상을 탐미적으로 노래한 반면, 《문의 마을에 가서》를 발표한 이후부터는 어두운 시대상황과 맞물리면서 현실에 대한 치열한 참여의식과 역사의식으로 시 세계가 바뀌어갔다. 게다가 1980년 5월 이후부터 시작된 투옥, 고문, 연금은 그의 시에 커다란 영향을 주어 역사와 현실 참여를 노래하게 되었다. 그러나 영웅주의에 물들지 않고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 그만의 독특한 시 세계를 이루었다. 연작시 《만인보》로 시적 형상성을 얻은 뒤 장편서사시 《백두산》을 통해 더욱 빛을 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