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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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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몽(髙濟夢) 독립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54
조회
132
1895년(고종 32)∼미상

경기도 강화군 부내면 신문리 40에서 태어났다

1919년 3월 1일 손병희(孫秉熙) 등이 〈조선독립선언(朝鮮獨立宣言)〉을 발표하자 18일에 교사 조구원(趙龜元)·구연준(具然濬), 보성고등보통학교(普成高等普通學校) 생도 오영섭(吳永燮), 김한영(金翰永), 김영희(金永禧), 조봉암(曺奉岩), 주창일(朱昌日) 등과 함께 강화읍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

고제몽은 조구원, 구연준 등과 제2결사대를 조직하여 당시 정치를 반대하는 인쇄물을 발간하기도 하였다. 3월 20일경에는 조구원, 오영섭과 함께 조선독립운동을 방해하는 자들에게 자필로 경고문을 작성하여 발송하였는데, 고제몽은 읍내의 잡화상 유종식(兪鍾植) 앞으로 ‘조선독립운동에 찬동하고 그 기운을 왕성하게 하기 위하여 점포를 폐쇄하라’는 내용을 우송하였다.

조구원은 강화경찰서 내(內) 경부 이해용(李海用) 앞으로, 오영섭은 강화경찰서 순사부장 기희미안(記喜美安) 앞으로 조선독립운동을 하는 사람을 검거하지 말라는 내용을 보냈다. 이들은 필적조사결과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는데, 독립선언문(獨立宣言文)을 인쇄 배포한 혐의로 검거되어 오늘 경성검사국(京城檢事局)으로 송치되어, 고제몽은 9월 30일에 보안법위반죄로 태90을 맞고 석방되었다.

1920년에는 동아일보 인천지국 강화분국(江華分局)의 기자로 임명되기도 하였다. 이후 독립을 위해 헌신하다가 중국 상해로 망명하여 신문기자로 언론계에 종사하면서 대한민국임시정부 요인과 자주 접촉하면서 의견을 교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