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수관(髙壽寬) 조선 후기 판소리 명창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1:53
조회
395
생몰년 미상. 조선 순조 · 철종 때 활동하였던 판소리 명창으로 충청남도 해미(海美)에서 태어나 말년에는 공주에서 살았다.
판소리를 익혀 명창이 되었는데 뒤에 염계달(廉季達)의 영향을 받아 흥보가를 잘 불렀다 한다. 권삼득(權三得) · 모흥갑(牟興甲) · 염계달 · 송흥록(宋興祿) · 신만엽(申萬葉) 등과 함께 서울에서 공연활동을 벌여 이른바 판소리 8명창으로 꼽혔다.
순조 때 이들의 활동상황이 여러 문헌에 보이는데 흔히 고송렴모(髙宋廉牟)라 하여 네 명창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만년에는 고향에 내려와 있었고 80세가 넘게 살았는데 즉흥적으로 한시를 지을 만큼 학식이 있어 시서화(詩書畵) 3절이라 이르는 신위(申緯)와 교유가 깊었던 것이 자하(紫霞)의 문집에 보인다.
여러 청을 잘 구사하여 후세에 그를 ‘딴청일수’라 하였다. 춘향가 · 흥보가에 장하였고 특히 춘향가 가운데 자진사랑가를 잘 불렀다. 자진사랑가를 염계달 추천목으로 아기자기하게 불러 후세에 판소리 명창들이 이 대목을 부를 때에 흔히 ‘예전 장안(長安) 명창 고동지(髙同知)제로 사랑가를 부르겠다’고 말하고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하고 소리를 하는 수가 많다.
신재효(申在孝)는 그의 이런 아기자기한 음악성을 ‘고동지(髙同知) 수관이난 동아부자(同我婦子) 탑피남묘(?彼南畝) 은근문답(慇勤問答) 하는 거동 근과농상(勤課農桑) 백낙천(白樂天)’이라 하였다.
그의 자진사랑가는 오늘날 널리 불리어지고 있다.
판소리를 익혀 명창이 되었는데 뒤에 염계달(廉季達)의 영향을 받아 흥보가를 잘 불렀다 한다. 권삼득(權三得) · 모흥갑(牟興甲) · 염계달 · 송흥록(宋興祿) · 신만엽(申萬葉) 등과 함께 서울에서 공연활동을 벌여 이른바 판소리 8명창으로 꼽혔다.
순조 때 이들의 활동상황이 여러 문헌에 보이는데 흔히 고송렴모(髙宋廉牟)라 하여 네 명창의 이름이 많이 나온다. 만년에는 고향에 내려와 있었고 80세가 넘게 살았는데 즉흥적으로 한시를 지을 만큼 학식이 있어 시서화(詩書畵) 3절이라 이르는 신위(申緯)와 교유가 깊었던 것이 자하(紫霞)의 문집에 보인다.
여러 청을 잘 구사하여 후세에 그를 ‘딴청일수’라 하였다. 춘향가 · 흥보가에 장하였고 특히 춘향가 가운데 자진사랑가를 잘 불렀다. 자진사랑가를 염계달 추천목으로 아기자기하게 불러 후세에 판소리 명창들이 이 대목을 부를 때에 흔히 ‘예전 장안(長安) 명창 고동지(髙同知)제로 사랑가를 부르겠다’고 말하고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하고 소리를 하는 수가 많다.
신재효(申在孝)는 그의 이런 아기자기한 음악성을 ‘고동지(髙同知) 수관이난 동아부자(同我婦子) 탑피남묘(?彼南畝) 은근문답(慇勤問答) 하는 거동 근과농상(勤課農桑) 백낙천(白樂天)’이라 하였다.
그의 자진사랑가는 오늘날 널리 불리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