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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의 의병장 고종경과 고씨동굴.

작성자
고주호
작성일
2011-09-20 19:25
조회
228
안녕하세요.
아래 주소의 글은  저의 글로서 저의 블로그"후세백작"에서 카테고리"역사의 꼬리를 잡아보며"에서
" 고종경과 고씨동굴"이란 글의 아래 주소를 올려 봅니다.
http://blog.daum.net/kkks1/376

이 글은 당시 평창군수 남천 권두문이 임란일지 "호구일록" 원본에서 발췌한 것을 정확히 번역하여
공개하는 자료 입니다.
이로서 당시 고종원 형제 어르신들의 역사내용을 정확하게 짚어 볼수있는 자료로 남천일지
"호구일록"에 글이 처음 공개되는 이야기 입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있는 역사보다 고종경의 사형에 이르기 까지의 사형 집행자 권두문 군수의
생생한 기록속에 당시 고종경 어른을 강원도에서 의병을 일으키다 강원도백 유종길의 지나친 요구로
미완에 그치고 어이없이 사형 당하는 미완의 의병장으로 그친 사연 입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임진왜란 당시 모리부대의 원주감영 접수까지에 강원도에서 보여주는 유일한 의병
장의 모습이였습니다.

당시 고종경 어르신은 의병의 세를 규합하기도 전에 강원도백이 지정된 날자까지 왜군이 남한강을
건너 강원도를 처 들어올까 예상하여 원주 흥업정도의 남한강 진지로 집결하라는 명에 이는 왜구에
직접 대항하라는 명에 이것은 세의 싸움이 안 되는 전면전이라 의병들이 전부 모이질 못하고 고종경
어른은 영월엔 현감이 없으므로 평창으로 압송되어 사형을 하라는 명에 권두문 평창군수는 사형을
집행하였던 것 입니다.

의병이 발하면 국가의 명령과 규율을 엄수해야 되지만 이 의병모집은 아직 세를 전열하지도 못한 상
태에서 강원도백의 무리한 명령에 의병활동을 시작도 못하고 의병장 고종경 어른은 비운을 맞이한 것
입니다.

이 일은 420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복권되어야 하며 의병장 대열에 올라야 합니다.
당시 권두문 군수 후손의 손에 의해 "호구록'이 공개되며 그 속에  고종경 어른의 사형 집행시의 이것은
잘못이라는 내용이 적나라하게 이해될수 있고 또한 강원도백이 사형집행후에 뒤 늦은 연락으로 고종경
사면하라는 명도 밝혀 집니다.

당시 혼란한 나라에 구국의 길에서 충족치 못한 명에 따르지 못햇다고 사형하는 것은 아쉬움이 남고
이는 우리 후세의 자손들이 복권시키고 또 널리 알리어 의병장 고종원 이란 이름을 알리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저의 글을 읽으시고 화전군파, 그리고 제주 고씨 여러분들은 이 고종원 형제에 미완의 의병장
고종경 어른의 義를 밝혀야 하고 영월 고씨동굴엔 고종원 형제의 의병의 계획의 잇었다는 사실을 기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우리 후손들로서는 그 분의 의병장의 모습을 다시금 조명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에 제주 고씨 여러 어르신들이 모두 같이 노력해 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