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씨중앙종문회 02)755-0919
고씨종문회총본부 064)751-0711, 758-5355
만든이 중시조32세손 고재민 jemina23@naver.com

가문을빛낸인물

Created with Sketch.

고종석(髙鍾碩) 해병대 일등병조(현 중사)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2:13
조회
41819

● 고종석(髙鍾碩)  해병대 일등병조(현 중사)
● 생몰연대 : 1931.12.6.-1950.8.25.
● 출신지역 : 경기도 개풍
● 최종계급 : 해병대 일등병조(현 중사)
● 상훈내용 : 2계급 특진
● 참고문헌 : 한국의 전쟁영웅들, 호국용사 100선

1. 생애(1931∼1950)
1931년 12월 6일 경기도 개풍군에서 출생한 고종석(髙鍾碩) 해군 1등 병조는 개성상업학교를 졸업하고 동년 7월 해병 제2기생으로 군에 입대하였다. 최초 김성은부대에 배치되어 지리산 및 제주도 일대의 토벌작전에 참가하여 전공을 수립하였다.

그는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3등 병조(하사, 군번 8112267))의 계급으로 김성은부대 제1중대 1소대 분대장으로 복무하면서 함양·진주진구 전투와 진동리지구 전투, 통영상륙작전에 참가하여 많은 전과를 거두었다. 특히 경남 진동리지역에서 북한군 제6사단 정찰대대를 기습공격하여 적의 침공을 저지함으로써 진동리-마산간의 보급로를 개척하고 낙동강 최후 방어선을 사수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1950년 8월 25일 그는 통영지역 탈환을 위해 역습을 감행해 온 적과 백병전을 전개하던 중 방망이수류탄이 호 안에 떨어지자 자신의 몸으로 수류탄을 덮쳐 분대원의 목숨을 구하고 장렬히 전사하였다.

그는 대통령 특명으로 해군 3등 병조에서 해군 1등 병조로 2계급 특진하였다.

2. 공적
1950년 8월 16일 미명에 고성을 점령한 데 이어 이날 오후 5시 통영시 입구인 원문고개로 진출한 북한군 제7사단 650여 명이 통영 시가지를 점령한 후 통영의 해안선 일대와 북방의 고지 일대에 병력을 배치하고 방어선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다.

상황이 이렇게 전개되자 해군 총참모장 손원일(孫元一) 제독은 해병대에 출동명령을 하달하였다. 이에 따라 해병대 김성은(金聖恩)부대는 8월 17일 오후 6시 해군 사상 처음으로 적진에 대한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이때 적은 아군 해병대가 통영 항구 정면으로 상륙해 올 것이라 판단하고, 북쪽 고지에 있던 병력을 야음을 틈 타 급히 남해안 일대로 이동 배치하였다.

그러나 해병대는 적군의 허를 찔러 해군 제703함 등 8척의 함정 지원 아래 적으로 하여금 시가지 남쪽 해안으로 상륙하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그 일대에 포화를 집중시키는 가운데 기습적인 상륙작전을 감해하여 19일 오전 10시경 적의 수중에 들어갔던 통영 시가지를 완전 탈환하기에 이르렀다.

이어 해병대는 적의 유일한 공격로가 될 원문고개를 방어하기 위해 제2중대와 7중대를 이곳에 배치해 방어진을 구축하고 고성방면으로 침공해 올 적의 공격에 대비하고 있었다. 19일 오후 3시 40분 경 적은 활로를 찾기 위한 반격을 가해왔다. 무려 3시간 동안 580발의 포격을 원문고개의 아군에 가해왔다.

마침내 오후 7시가 되자 적은 1,000여 명의 병력으로 제2중대와 7중대 진지 정면으로 쇄도해왔다. 해병대는 박격포와 703함의 함포지원을 받으며 적을 분쇄하기 시작했으나 적은 시체를 방패삼아 진내로 돌입, 치열한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피·아 간의 혈전은 4시간이나 계속되어 오후 11시 50분쯤에야 끝났다. 적은 수많은 시체를 남겨놓은 채 도주하였다.

해병대원들은 적의 시체에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맡으며 잠시나마 눈을 붙이던 20일 오전 2시 40분 경 적으로부터 재반격을 받았다. 한 밤의 정적이 포성으로 깨지고 침투해 온 적으로 인해 제7중대 진지 일각이 돌파되기도 하였다. 또다시 백병전이 시작되었다. 총검으로 찌르고, 개머리판으로 치는 것 외에는 전투기술이 필요가 없었다.

이 때 제1소대 1분대를 지휘하던 고종석 3등 병조는 한 순간 힘이 빠지고 있음을 느꼈다. 적탄 2발을 왼손에 맞았던 것이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사격을 계속해 적을 사살하는 등 분전을 거듭하였다. 적이 철수한 것은 오전 8시가 지나서였다.

고종석 3등 병조는 후송을 거부한 채 진지를 강화하며 방어태세를 굳히고 있었다. 21일 오후 10시쯤 적은 예상대로 다시 야간공격을 가해 왔다. 통영을 공략하려는 그들의 계획을 끝까지 달성하려는 듯 대규모 병력으로 3차 공격을 가해 온 것이다.

적의 발악적인 공격은 갈수록 치열해져 세 번째 백병전이 전개되었다. 선봉인 듯한 적 일부가 제1소대 진지로 파고들었으며, 또 한 무리도 고종석 3등 병조가 지휘하는 제1분대를 엄습해왔다. 그는 부상당한 몸임에도 불구하고 총검을 잡고 적과 맞서 싸웠다. 그가 6명의 적을 척살했을 때, 적들이 흩어지는가 싶더니 수류탄 1개가 날아들었다.

위기였다. 그러나 많은 것을 생각할 만큼 시간이 많지 않았다. 22세의 고종석 3등 병조는 '엎드려!'라고 외침과 동시에 수류탄을 향해 온 몸을 던졌다. 폭음이 들리고 그는 산화하였다. 분대원들은 어느 누구도 다치지 않은 채 분대장의 최후를 목격하였다. 그것은 분노로 이어져 일제히 진지를 박차고 나와 적들을 척살해 나갔다.

적은 이후에도 통영을 점령하기 위해 계속 공격해왔으나 해병대의 강인한 투지와 용맹 앞에 좌절을 거듭해야만 하였다. 전투가 끝난 뒤 분대원들을 구하고 원문고개를 지킨 고종석 3등 병조는 대통령 특명에 따라 2계급 특진, 1등병조로 추서되고 전 장병의 귀감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