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본관은 전주, 1653년(癸巳)생, 태종의 10세손. 숙종(肅宗) 6년(경신, 1680) 별시(別試) 병과12(丙科12)에 급제(엠파스한국학지식) 호조좌랑 재직 때에는 동지사가 청나라에 가지고 가는 세폐포(歲幣布)의 칫수가 해마다 늘어나서 병자년 이후에 바치던 것보다 9척이나 긴 것을 알고 이것을 그대로 두면 앞으로 무궁한 폐단이 될 것이라 우려하여 주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늘어난 길이만큼 끊어 버리고 보냈다고 한다.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는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경륜으로 재능있는 관리였으나 당쟁의 폐습 속에서 불운을 겪었다. 그 대신 학문의 세계에 몰두하여 다양하고 심오하며 방대한 양(60여종 200권)의 저술을 세상에 남겼다.(고창석, 탐라순력도와 병와 이형상 목사 3쪽)
선생께서 제주목사로 재임 당시인 숙종 28년에서 29년(1702~1703)에 제주도 관내를 순력하면서 자연, 역사, 산물, 풍속 등을 화공 김남길로 하여금 41폭의 채색그림으로 그리게 한 화첩으로 표지는 청회색 무늬가 있는 고급 비단으로 表具되어 있다.
자신이 쓴 서문을 보면 1703년 5월에 완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오랫동안 그의 후손들이 관리해 왔으나, 종손 李秀昌(경북 영천시 거주)씨가 기증하여 지금은 제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이형상의 〔남환박물〕과 함께 제주의 귀중한 자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