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진(髙在晋) [의과] 순조(純祖) 12년(1812) 임신(壬申) 증광시(增廣試)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3 18:09
조회
48
자 : 사진(士晋)
생년 : 정미(丁未) 1787년
합격연령 : 26세

[이력사항]
관직 : 정(正)
관직 : 첨정(僉正)

▒ 상세설명
*정(正): 조선시대 정삼품(正三品) 당하관(堂下官) 관직이다.

① 종친부(宗親府), 돈령부(敦寧府), 상서원(尙瑞院), 봉상시(奉常寺), 종부시(宗簿寺), 사옹원(司饔院), 내의원(內醫院), 상의원(尙衣院), 사복시(司僕寺), 군기시(軍器寺), 사섬시(司贍寺), 군자감(軍資監), 장악원(掌樂院), 관상감(觀象監), 전의감(典醫監), 사역원(司譯院), 훈련원(訓鍊院), 선공감(繕工監), 사도시(司導寺), 사재감(司宰監), 제용감(濟用監),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등에 두었으나, 상서원정은 도승지(都承旨)가 예겸하기 때문에 정삼품 당상관(堂上官)이다.

종친부·돈령부·훈련원을 제외하면 모두 실질상 으뜸 벼슬이다. 이중 돈령부·선공감·사도시·사재감·제용감·내자시·내섬시·예빈시의 정은 후에 폐지되었으며, 사섬시는 1705년(숙종 31)에 호조(戶曹)에, 종부시는 1864년(고종 1)에 종친부에 병합되었다.

② 세자의 중증손(衆曾孫), 대군(大君)의 중손(衆孫), 왕자군(王子君: 왕의 庶子)의 중자(衆子)와 적장증손(嫡長曾孫)에게 처음 주던 정삼품 당하관의 작호(爵號)로 종친부와 돈령부에 소속되어 있었다.

첨정(僉正): 조선시대 정삼품(正三品) 당하아문(堂下衙門) 중 시(寺)·원(院)·감(監) 등의 관아에 속한 종사품(從四品) 관직이다.

[가족사항]

[부]
성명 : 고경철(髙景哲)
관직 : 전의감직장(典醫監直長)

[조부]
성명 : 고응수(髙應壽)
관직 : 혜민서주부(惠民署主簿)

[증조부]
성명 : 고세협(髙世協)
품계 : 통덕랑(通德郞)

[외조부]
성명 : 김종흡(金宗潝)
본관 : 청양(靑陽)
관직 : 첨지(僉知)

[처부]
성명 : 최봉민(崔鳳民)
본관 : 경주(慶州)
관직 : 찰방(察訪)

▒ 상세설명
*증광시(增廣試): 조선시대 즉위경(卽位慶)이나 30년 등극경(登極慶)과 같은 큰 경사가 있을 때 또는 작은 경사가 여러 개 겹쳤을 때 임시로 실시한 과거.
*의과(醫科): 고려 ·조선시대 과거(科擧)제도 중 의관(醫官)을 뽑기 위하여 둔 시험과목.
*직장(直長): 조선시대 각 관아에 두었던 종칠품(從七品) 관직이다.

종친부(宗親府), 돈령부(敦寧府), 상서원(尙瑞院), 봉상시(奉常寺), 종부시(宗簿寺), 내의원(內醫院), 상의원(尙衣院), 군기시(軍器寺), 사섬시(司贍寺), 군자감(軍資監), 장악원(掌樂院), 사역원(司譯院), 선공감(繕工監), 풍저창(豊儲倉), 광흥창(廣興倉), 사도시(司導寺), 사재감(司宰監), 전연사(典涓司), 종묘서(宗廟署), 사직서(社稷署), 경모궁(景慕宮), 제용감(濟用監), 평시서(平市署), 사온서(司醞署), 전생서(典牲署), 내자시(內資寺), 내섬시(內贍寺), 예빈시(禮賓寺), 의영고(義盈庫), 장흥고(長興庫), 사포서(司圃署), 양현고(養賢庫), 혜민서(惠民署), 덕릉(德陵), 지릉(智陵), 헌릉(獻陵), 선릉(宣陵), 순릉(順陵), 정릉(靖陵), 희릉(禧陵), 경릉(景陵) 등에 각 1원씩 두었다. 사옹원(司饔院), 관상감(觀象監), 전의감(典醫監)에는 각 2원씩 두었다.

돈령부직장은 공주(公主)의 아들에게 처음 제수 하였으며, 상서원직장은 도정(都政) 때마다 출륙(出六)하였다. 봉상시직장은 승문원(承文院)의 박사(博士: 正七品)나 저작(著作: 正八品) 중에서 골라서 임명하였으며, 종부시직장은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가 아니면 의수(擬授)받지 못하였다. 사옹원직장은 여정색(餘丁色)을 관장(管掌)하였으며, 상의원직장은 의대색(衣襨色)을 관장하였으며, 내자시직장은 주색(酒色)과 장색(醬色)을 관장하였으며, 내섬시직장은 미면색(米麵色)을 관장하였으며, 사도시직장은 미면색과 봉상색(捧上色)을 관장하였으며, 예빈시직장은 잡물색(雜物色)·조과색(造果色)을 관장하였다. 제용감직장은 염고색(染庫色)을 관장하였으며, 사재감직장은 어물색(魚物色)을 관장하였으며, 의영고직장(義盈庫直長)은 유밀색(油蜜色)·호초색(胡椒色)을 관장하였으며, 장흥고직장(長興庫直長)은 석자색(席子色)을 관장하였다. 양현고직장(養賢庫直長)은 성균관학정(成均館學正: 正八品) 이상의 관원을 단망(單望)으로 선정(選定)하여 임명(任命)하였으며, 전생서직장은 훈련원봉사(訓鍊院奉事: 從八品)를 전임(轉任)시켰다.

이와 비슷한 직책의 종칠품에는 영(令)·승(丞) 등이 각 부서에 설치되었다. 그러나 1446년(세조 12) 1월 관제 개혁 때 모두 직장으로 통일하여 종전의 부사(副使)·승(丞)·부승(副丞) 직제를 주부(主簿)·직장(直長)·봉사(奉事)의 체계로 일원화하였다. 이에 따라 중앙의 약 30개 부서에 이 관직이 설치되었다.

*주부(主簿): 조선시대 종육품(從六品)의 낭관(郞官)이다.

종친부(宗親府)·돈령부(敦寧府)·한성부(漢城府)·봉상시(奉常寺)·종부시(宗簿寺)·사옹원(司饔院)·내의원(內醫院)·상의원(尙衣院)·사복시(司僕寺)·군기시(軍器寺)·사섬시(司贍寺)·군자감(軍資監)·장악원(掌樂院)·관상감(觀象監)·전의감(典醫監)·사역원(司譯院)·선공감(繕工監)·풍저창(豊儲倉)·광흥창(廣興倉)·사도시(司䆃寺)·사재감(司宰監)·제용감(濟用監)·평시서(平市署)·사온서(司醞署)·전생서(典牲署)·내자시(內資寺)·내섬시(內贍寺)·예빈시(禮賓寺)·의영고(義盈庫)·장흥고(長興庫)·양현고(養賢庫)·혜민서(惠民署)·전옥서(典獄署) 및 무관관서의 훈련원(訓鍊院)에 두었다.

통덕랑(通德郞) : 조선시대 정오품(正五品) 동반(東班) 문관(文官)에게 주던 품계(品階)이다. 정오품의 상계(上階)로서 통선랑(通善郞)보다 상위 자리이다. 1392년(태조 1) 문산계가 제정된 이후로 문관에게만 주다가, 대전회통(大典會通)에서는 종친(宗親: 임금의 4대손까지의 친족)에게도 이 품계를 주었다.

첨지사(僉知事): ① 조선시대 중추부(中樞府)에 소속된 정삼품(正三品) 당상관(堂上官)으로 정원은 8원이다. 그 중 3인은 오위장(五衛將)의 체아직(遞兒職)이었으며, 공석이 있으면 승전(承傳)한 의관(醫官)·역관(譯官)으로 제배(除拜)하였다. 이들을 30개월을 한정하여 체(遞)하였고, 노인직(老人職)으로서 승자(陞資)하여 임명된 자는 3개월에 한(限)하도록 하고, 가설(加設)된 직에 대하여는 재직 1개월이 지나면 그 직을 파면(罷免)하였다.

관계(官階) 상으로 절충장군(折衝將軍)이라고 하였고, 특별히 맡은 직사(職事)가 없어 고위관료들의 대우직(待遇職)으로 운용되었다.

② 조선 초기 합문(閤門)에 두었던 정사품(正四品) 관직인 인진사(引進使)를 1414년(태종 14)에 개칭한 것이다.

찰방(察訪): 조선시대 각 도(道)의 역참(驛站)을 관장하던 문관(文官) 종육품(從六品) 외관직(外官職)이다.

서울을 중심으로 각 지방에 이르는 중요한 도로에 마필(馬匹)과 관명(官員)을 두어, 공문서(公文書)를 전달하고 공용여행자(公用旅行者)에게 숙소제공·마필공급 등 편리를 도모하는 기관(機關)을 역참이라 하였는데, 약간의 역참(驛站)을 1구(區)로 하여 이를 역도(驛道)라 칭하고, 그 구간의 마정(馬政)을 맡아보는 관직(官職)을 마관(馬官)이라 하여, 교통로(交通路)를 이용하여 정보수집(情報蒐集)도 하였는데 고려 후기부터 역승(驛丞)이라고 하다가 1535년(중종 30)부터 찰방(察訪)이라고 개칭하였다.

경국대전에 보면 조선 초기 전국에 23명의 찰방과 18명의 역승(驛丞)을 두어 총 537역을 관장케 했는데, 1535년(중종 30)에는 역승을 없애고 전국의 큰 역에 40명의 찰방을 두고 이를 찰방역이라 하였다.

경기도(京畿道)에 6원, 충청도(忠淸道)에 5원, 경상도(慶尙道)에 11원, 전라도(全羅道)에 6원, 황해도(黃海道)에 3원, 강원도(江原道)에 4원, 함경도(咸鏡道)에 3원, 평안도에 2원을 두었다. 작은 역에는 역장을 두어 찰방이 이를 관장하였는데, 중요한 요소에는 겸찰방(兼察訪) 12원을 두어 찰방의 비행(非行)을 감시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