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일(髙斗一) 3.1운동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12:41
조회
42083
?~1919(己未) 3. 31 (3·1운동)
출신지 : 평북 구성군(龜城郡)
활동지 : 평북 구성(龜城)
공의 고향인 평북 구성군(龜城郡)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3월 11일 군내 남시(南市)에서 4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시위운동의 불길은 계속되어 3월 30일,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300여 명의 군중이 읍내 성안으로 몰려 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불렀으며 왜경이 출동하여 발포하자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고 해산하였다.
3월 31일은 남시(南市)의 장날이어서 공은 수천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부르니 그 함성은 천지가 진동하는 듯 하였으며 근처에 있는 신시(新市)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왜경과 헌병들의 무자비한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때 공은 적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출신지 : 평북 구성군(龜城郡)
활동지 : 평북 구성(龜城)
공의 고향인 평북 구성군(龜城郡)에서 일어난 만세시위는 3월 11일 군내 남시(南市)에서 400여 명의 군중이 참여하였다.
시위운동의 불길은 계속되어 3월 30일, 천도교인을 중심으로 300여 명의 군중이 읍내 성안으로 몰려 들며 독립만세를 소리 높이 불렀으며 왜경이 출동하여 발포하자 수십명의 사상자를 내고 해산하였다.
3월 31일은 남시(南市)의 장날이어서 공은 수천명의 군중과 함께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독립만세를 목이 터져라 부르니 그 함성은 천지가 진동하는 듯 하였으며 근처에 있는 신시(新市)에서도 만세운동이 일어났다
이날 왜경과 헌병들의 무자비한 발포로 많은 사상자가 발생하였으며 이때 공은 적의 총탄에 맞아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공의 공훈을 기리어 200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