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두경(髙斗經)선생과「송학세고(松鶴世稿)」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0-01-25 19:42
조회
4491
고두경(髙斗經)선생과「송학세고(松鶴世稿)」
1. 작자 약전
고두경(髙斗經, 광해군 11~숙종 16, 1619~1690)은 자는 허중(虛中)이며, 호는 황탄거사(黃灘居士), 또는 만경당(晩警堂)이라 했다. 그는 병자호란 때, 의병과 군량을 모아 청병과
대적하려 했던 고부민의 장남으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만경당 고두경은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었는데, 일찍이 유학에 깊이 정통하게 되었고 이치의 근본됨을 이해해서, 몸은 실제를 체득하고 마음은 이단을 열어 우암이 크게 기대한 바가되었다. 이에 우암이 친히 당호를 지어, 손수 써서 주었으니, 그것이 만경당이다. 그리고 무사평안한 때에는 학문을 토론하고, 화를 만났을 때는 서로 권면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주 오고 갔던 서찰이나, 주고 받았던 시문에서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보면 사제간치고도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우암 송시열이 좌의정으로 있을 때, 인성왕후의 복상문제가 거론되었다. 우암은 대공설을 주장했으나, 남인이 주장한 기년설이 채택되고, 평소 불화관계에 있었던 허적등의 모함으로, 우암은 덕원에 유배되었는데(1675년), 이때 만경당 고두경은 송시열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했던, 칠매 김모, 안촌 박광후 등과 함께 스승의 찬적을 억울하고 비통하게 여겨 임금께 상소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모든 일을 이와 같이 명분과 도리를 쫓아 행하려 했다.
송재직은 고두경의 묘갈명에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명예와 이득의 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 이르기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위험과 화의 지경에서는 사람마다 다 두려워하는 것인데, 아아 우리 고두경선생은 오직 의를 취했도다. 세상의 도가 기울어 화를 만나니, 조정도 평안치 못하고 많은 간신배들이 요로에 있어, 스승이 화를 입으므로, 봉장을 올려,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도리어, 크게 화가 미쳤음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그 뜻을 더욱 굳건하게 했도다."
2. 한시문 개관(槪觀)
만경당 고두경의 시문은 「송학세고」2권에 실려 있다. 「송학세고」는 고두경 선생과 그의 부친 고부민의 문집이다. 이들 부자는 그들의 사우관계로 봐서는, 원래 상당히 많은 분량의 시문이 각각 따로 전했을 것으로 보이나, 오랜동안 방치되어 온 관계로 많이 산일되었고,해방후에 후손들이 이 두 사람의 남은 시문을 정리해서 「송학세고」라고 이름을 붙였다.
「송학세고」2권에는 시 134수, 서 3편이 실려 있다. 시 134수중에는 서증거, 박여기, 고정경, 김숙희 등이 화운한 시 17수가 포함되어 있으니, 결국 고두경의 시는 117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117수 중에는 5언절구 8수, 5언율시 6수, 7언절구 77수, 7언율시 26수로 7언율시가 반을 훨씬 넘는다.
그런데 그의 시 중에는 인물을 얘기한 시가 28수, 만시가 26나 되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그가 그만큼 다정다감하고 인간애가 깊었다는 뜻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또 그 중에서는 우암 송시열을 내용으로 한 시가 7수, 황진, 박여기, 김중원, 서중거 등에 대한 시가 3,4수씩이나 되어, 시를 통해서 그의 행적에서 드러나지 않는 교우관계를 알 수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이것은 그만큼 그의 시가 단조롭다는 얘기도 된다.
시<만경당운2수(晩警堂韻二首)>는 그가 우암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인연으로 우암이 만경당 이라는 당호를 내려 주었는데, 그 당호를 소재로 한 것이다. 첫째 수는 반평생 편안히 지내다가 공자가 천명을 알았다는 50의 나이가 되어, 자기의 게으름을 자책하고 있는 시요, 둘째 수는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려는 유학적인 자성을 보인 시다.
<경차우암선생운(敬次尤菴先生韻)>은 우암이 복상문제로, 허적등의 모함을 입어 덕원으로 귀양가 있을 때, 나라에 대한 염려와 스승의 고생됨을 걱정하여 읊은 시이다. 같은 내용과 비슷한 분위기의 시로<次尤菴韻二首>가 있다. 이것은 아마 우암이 제주도로 이배(移配)되었을 때를 내용으로 해서 쓴 시로 짐작된다.
3. 한시문 발췌문번역(拔萃文飜譯)
晩警堂韻二首 만경당에서[2수]
半世優遊苦此身 반평생 편안히 지냈던 일 이몸 괴롭게 하니,
如今忽覺自傷神 이제 홀연 저절로 마음 슬퍼짐을 알 듯도 하네.
嗟五十知天命 아아, 공자는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 했으니,
大聖元來有幾人 그러한 큰 성인 원래 몇 사람이나 있었는가?
萬物皆存我一身 만물이 모두 내 한몸에 있으니,
外求何必費精神 밖에서 구하려고 어찌 꼭 정신을 허비하리오.
各循日月當行事 각각 이 순리(日月)를 쫓아 마땅히 일을 행하나니,
大道昭昭不遠人 큰 도(道)는 밝고 밝아 사람에게서 멀지 않네.
敬次尤菴先生韻二首* 삼가 우암선생 시운을 따라 지음[2수]
剝盡諸陽勢奈何 박괘, 양이 다 없어져 가니 이 형세 어쩌랴.**
一身榮辱卽無嗟 한 몸의 영욕을 이제 한탄할 수만은 없네.
訴憂只在邦家事 염려되는 것은 다만 나라의 일뿐인데,
自古亂因受誣多 예로부터 어지러움으로 인해 무고당하는 일이 많았다네.
白首孤臣負大何 늙고 외로운 신하 큰 짐을 어찌 하랴?
風 雪虐兩堪嗟 찬 바람 눈보라 둘 다 견디기 어려운 것을.
逢君試問江南事 선생님을 만나 강남에서 즐겁게 지냈던 일 묻고 싶은데,
柳綠梅殘草色多 버들잎 푸르고 매화꽃은 지니 풀빛이 짙어 지네.
▒ 상세설명
* 우암(尤菴) ; 송시열(宋時烈,1607-1689), 학자, 노론(老論)의 영수,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김장생, 김집의 문인, 봉림대군의 사부
** 박괘(剝卦) ; 64괘의 하나로 곤(坤:땅을 뜻함)은 아래 간(艮:산을 뜻함)은 위에 있음
和趙子直相愚次溪堂韻二首* 조상우에 화답하면서 계당의 시운에 따라
壁間淸律勝琅 벽 위를 스쳐가는 노래소리 옥을 굴리는 소리보다 아름다워라.
吟罷依然對面看 노래소리 마치고 의연히 얼굴을 대하여 바라보네.
此日殘花尤可賞 오늘로 꽃지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우니,
願君母惜一番還 그대여, 한번 돌아가게 됨을 슬퍼하지 말세나.
幾作凡踵此地遊 그대 좇아 여기서 노닌지 그 몇 번이나 되었던가?
洗心間步興悠悠 마음 씻고 한가이 걸으니 기쁨이 끝이 없네.
溪邊藉草論懷處 시내삭에 풀자리는 마음을 나누었던 곳.
赤葉飛來覺暮秋 단풍잎 날리니 늦가을이 되었나 보네.
▒ 상세설명
*조상우(趙相愚,1640~1718) 문신,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趙子直兼呈溪堂 조상우[子直은 상우의 字]께 편지를 하면서 계당에 대해 씀
却來高臥碧溪流 물러나 푸른 개울가에 편히 쉬니,
非爲南山林壑幽 남산의 숲속 골짜기의 그윽함 이 아닌가?
世路紛冗無樂處 세상은 어지러워 마음둘 곳 없으니,
試當深入秘 秋 신비한 가을의 자취따라 깊이 들어가 보려네.
示楚地高姓人 나라 땅에서 고씨 성의 사람을 보고
君姓爲高我亦同 그대의 성은 고씨요, 나도 또한 고씨이니,
本貫雖異喜無窮 본관은 비록 다르나 기쁘기 끝이 없네.
相逢未洽還相別 만난 정 다하지 못했는데, 또한 서로 이별이라,
此後難期音信通 이후에 만날 기약하기 어려우니 서신연락이나 잊지 말세.
過黃灘述懷 황탄을 지나며 회포를 읊다
雪中蕭寺眼俱靑 눈 내리는 쓸쓸한 절에서 마주하는 눈빛은 푸른데,
亂舞狂歌酒未醒 멋대로 춤추고 노래하니 술이 깨지 않았는가?
昔年曾有玆山會 지난해 일찍이 이 산에서 만났더니,
今日尋思涕自零 오늘, 이 생각 저 생각에 눈물 저절로 흐르네.
和景美秋日吟四首* 황경미의 <추일>시에 답하여
階邊寒菊傲霜開 충계 옆에 한국, 찬 서리에도 오만하게 피었는데,
風送淸香入酒杯 바람이 그 맑은 향기를 술잔으로 보내는 듯.
老夫若得長無事 이 몸이 이것을 얻는다면 오래도록 무사할 것 같은데,
黃白花時歲一來 희고 누런 꽃 일년 두고 한번만 필 뿐이니.
在世心無一樂事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즐거운 일 하나도 없더
暮年千慮與時新 늙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자주 일어나네.
莫言灘老耽花酒 황탄노인이 꽃과 술에 탐닉 하였다 하지 마소.
强飮銷愁苦眉頻 술을 마셔 근심 잊고 미간의 주름 펴 보네.
風動黃花香入來 바람이 황국을 흔들어 그 향기 퍼져오니,
病軀扶起却含杯 병든 몸 부추기어 일으켜 술잔을 멈추네.
愁邊更得人間興 근심속에 한편으론 인간의 흥취 얻으니,
自此悲懷暫借開 이로부턴 슬픈 생각 잠시 빌어 없애보려네.
可惜玄玄造化兒 신묘하게 자라던 아이 사랑할 만하더니,
如何便我 成絲 어째서 나로 하여금 구렛나룻 성성하게 하는가?
子夏喪明埋於理** 자하가 자식 잃고 실명함은 사리에 어두움이니,
冥頑此漢己知知 이 사나이 우매함도 몸소 알만 하도다.
▒ 상세설명
*경미(景美) ; 황진, 선조 때 문신, 자는 경미, 호는 서담
*자하상명(子夏喪明) ; 자하(子夏)가 자식을 잃고 그 슬픔 때문에 실명한데서 유래된 말로 자식을 읽은 것을 뜻함.
偶吟二首 우연히 읊다
但願長生與富貴 단지 장생과 부귀를 원할 뿐이니,
何求聞達世人譽 어찌 현달해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얻으려 하겠는가?
能知不 都無事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모두 평화로울지니,
高臥寒齊萬慮虛 고요한 서재에 누워 모든 생각을 비우네.
平生拙直任人嗤 평생 우직하게 살아 아첨꾼들의 우스객거리가 되니,
心事如今果執知 지금같은 심정을 과연 누가 알 것인가?
不 群英低眼看 많은 영웅들 두려워하지 않고, 눈깔아 바라보고,
自慙才薄負明時 스스로 재주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밝은 세상에 의지 하려네.
次風詠亭韻 풍영정 시운에 따라
閒臥高亭志可休 높은 정자에 한가히 누우니 마음 가히 쉴 만하고,
世間塵念百無愁 세간에 속된 생각과 백 가지 수심도 없어지네.
微風獨飮 酌 산들바람속 홀로 노자작 술을 마시니,
細雨依迷鸚鵡洲 이슬비에 아련한 모습, 앵무주 아닌가 의심해 보네.
江水山雲情不變 강물과 산의 구름 정겨움 변함이 없으니,
蒼松翠竹色長留 푸른 솔 푸른 대숲의 의연한 색 오래도록 간직하네.
可憐人事隋時異 가련한 세상 인심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
身後芳名萬萬秋 죽은 후 꽃다운 이름들 만세가 지나도록 전해질까?
登月出山次前人韻 월출산에 올라서 앞 사람의 시운에 따라
鉢繡爲裝石作蓬 바루에 수놓아 엎어 꾸민 듯한 바위가 봉우리 이루니,
九秋光景屬斯中 가을의 아름다운 경치 이 산중에 다 모였네.
半生來往玆山下 반평생 이 산 아래만 오고 가고 했더니,
今日登臨萬念空 오늘 산꼭대기에 올라보니 온갖 잡념 없어지네.
平山賞梅竹爲賦一絶 평산에서 매화와 대를 보고 지음
雪裏寒 庭上梅 눈보라 속에 꽃봉오리 연 정원의 매화,
淸 風味亦奇材 맑고 여윈 듯한 풍미 또한 걸출한 자품이네.
靑靑最愛池邊竹 푸르고 푸른 연못가의 대나무 가장 사랑하노니,
四節從來一色裁 사계절 지나도록 내내 변함없는 모습이네.
次尤丈韻二首* 우암어른의 시운에 따라
却把深誠直瀉眞 깊은 성충, 곧이 곧대로 진실을 토로하려 했더니,
如何天怒速如神 어인 일로 임금님의 노하심이 이같이 빠르신가?
因玆遺札登龍案 이로 인해 임금께 올릴 서찰 접어 두고,
擡眼長安望喜人 눈을 들어 서울을 보며 고운 님 생각하네.
海上寒風襲客衣 바다 위의 찬 바람 나그네의 옷자락을 파고 드는데,
此中行色涕堪揮 그중에 나그네의 모습 눈물을 자아내게 하네.
蒼溟萬里波濤險 푸른 바다 멀고멀고 파도는 험한데,
至祝檣帆好好歸 마음깊이 축원함은 돛대 높이 하고 무사히 돌아오소서.
▒ 상세설명
*우장(尤丈) ; 우암 송시열을 가리킴.
蓮珠亭次板上韻 연주정에서 액자의 시운에 따라
秋晩湖山綵繡形 늦가을 산과 호수에 비친 비단같은 모습에,
探間遊子暫時寧 탐승하던 나그네는 잠시 편안함을 느끼네.
無風此日波心精 한 점 바람도 없는 오늘은 파도마저 조용하니,
峰影分明倒壓亭 산봉우리의 그리자 분명히 정자앞에 거꾸로 엎드린 듯.
贈溪堂主人 계당 주인에게 지어 줌
流水山中意 산중을 흐르는 물의 뜻은,
浮雲世外情 뜬 구름같은 이 세상과는 다른 정취라.
夜深群動息 밤이 깊어 모든 짐승들 쉬니,
孤月更分明 외로운 달이 더욱 밝더라.
次柳敎官翠香堂韻 유교관의 취향당 시운에 따라
策到冠山阿母宮 재촉하여 관산의 아모궁에 다달아 보니,
一連滄海四望通 한결같이 바다로 이어져 사방으로 통해 있네.
樓堂夜浸千山月 누각은 밤이 깊어가고 산마다 다이 비추니.
松桂秋生萬壑風 소나무 계수나무에 가을 바람이 일어 수많은 골짜기로 불어 가네.
役役自浸行路客 힘겹게 걸으며 길가는 나그네된 것을 부끄러워하며,
間間却 主家翁 주인집 노인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도 하네.
人間富貴皆如夢 인간의 부귀영화는 다 꿈과 같은 것,
逐日含杯是傑雄 날마다 술을 마시고 지내니 이것이 곧 영웅호걸일세.
敬次諸丈挾仙樓韻二首 삼가 여러 어른들의 협선루 시운에 따라[2수]
我愛蘇仙放達風* 나는 소동과를 좋아하여 바람처럼 얽매이지 않고 살아왔더니,
來尋赤壁福川東** 오늘은 복천의 동쪽 적벽을 찾아 왔네.
平生逸樂今宵最 평생 놀고 즐긴 중에 오늘밤이 가장 즐거우니,
脫俗襟期付此中 세속을 벗어난 깊은 속마음을 여기서 노는 데에 붙이노라.
抱月飛仙赤壁前 적벽 앞에서 달을 끌어 안고 신선처럼 나는 듯,
遙遊淸興暮秋邊 늦가을의 맑은 홍취를 즐기네.
古人一語均爲賦 소동과가 단숨에 훌륭한 적벽부를 지었다고 하니,
今我具成詩數篇 지금 나도 시 몇 편을 다듬어 지어보네.
▒ 상세설명
* 소선(蘇仙) ; 소식, 중국 북송때의 문인. 호는 동파, 아 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더불어 삼소라고 불림.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며 서화에도 능하였음. 저서에 <적벽부>,「동파전집」등이 있음.
*적벽(赤壁) ; 원래는 중국 호북성 황강현에 있는 명승지로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었던 곳인데, 여기서는 화순 동복의 적벽을 가리킴.
1. 작자 약전
고두경(髙斗經, 광해군 11~숙종 16, 1619~1690)은 자는 허중(虛中)이며, 호는 황탄거사(黃灘居士), 또는 만경당(晩警堂)이라 했다. 그는 병자호란 때, 의병과 군량을 모아 청병과
대적하려 했던 고부민의 장남으로 광주에서 태어났다.
만경당 고두경은 우암 송시열의 문인이었는데, 일찍이 유학에 깊이 정통하게 되었고 이치의 근본됨을 이해해서, 몸은 실제를 체득하고 마음은 이단을 열어 우암이 크게 기대한 바가되었다. 이에 우암이 친히 당호를 지어, 손수 써서 주었으니, 그것이 만경당이다. 그리고 무사평안한 때에는 학문을 토론하고, 화를 만났을 때는 서로 권면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자주 오고 갔던 서찰이나, 주고 받았던 시문에서도 알 수 있는데, 그것을 보면 사제간치고도 각별한 사이였던 모양이다.
우암 송시열이 좌의정으로 있을 때, 인성왕후의 복상문제가 거론되었다. 우암은 대공설을 주장했으나, 남인이 주장한 기년설이 채택되고, 평소 불화관계에 있었던 허적등의 모함으로, 우암은 덕원에 유배되었는데(1675년), 이때 만경당 고두경은 송시열의 문하에서 같이 공부했던, 칠매 김모, 안촌 박광후 등과 함께 스승의 찬적을 억울하고 비통하게 여겨 임금께 상소를 하기도 하였다. 그는 모든 일을 이와 같이 명분과 도리를 쫓아 행하려 했다.
송재직은 고두경의 묘갈명에 다음과 같이 새기고 있다.
"명예와 이득의 도에 있어서는 사람마다 다 이르기를 즐거워하는 것이요, 위험과 화의 지경에서는 사람마다 다 두려워하는 것인데, 아아 우리 고두경선생은 오직 의를 취했도다. 세상의 도가 기울어 화를 만나니, 조정도 평안치 못하고 많은 간신배들이 요로에 있어, 스승이 화를 입으므로, 봉장을 올려, 이를 해결하려 했다. 그러나 도리어, 크게 화가 미쳤음에도 조금도 굴하지 않고, 그 뜻을 더욱 굳건하게 했도다."
2. 한시문 개관(槪觀)
만경당 고두경의 시문은 「송학세고」2권에 실려 있다. 「송학세고」는 고두경 선생과 그의 부친 고부민의 문집이다. 이들 부자는 그들의 사우관계로 봐서는, 원래 상당히 많은 분량의 시문이 각각 따로 전했을 것으로 보이나, 오랜동안 방치되어 온 관계로 많이 산일되었고,해방후에 후손들이 이 두 사람의 남은 시문을 정리해서 「송학세고」라고 이름을 붙였다.
「송학세고」2권에는 시 134수, 서 3편이 실려 있다. 시 134수중에는 서증거, 박여기, 고정경, 김숙희 등이 화운한 시 17수가 포함되어 있으니, 결국 고두경의 시는 117수라고 할 수 있다. 그의 시 117수 중에는 5언절구 8수, 5언율시 6수, 7언절구 77수, 7언율시 26수로 7언율시가 반을 훨씬 넘는다.
그런데 그의 시 중에는 인물을 얘기한 시가 28수, 만시가 26나 되어, 상당한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이는 그가 그만큼 다정다감하고 인간애가 깊었다는 뜻으로 설명할 수도 있겠다. 또 그 중에서는 우암 송시열을 내용으로 한 시가 7수, 황진, 박여기, 김중원, 서중거 등에 대한 시가 3,4수씩이나 되어, 시를 통해서 그의 행적에서 드러나지 않는 교우관계를 알 수도 있다. 그러나 반면에 이것은 그만큼 그의 시가 단조롭다는 얘기도 된다.
시<만경당운2수(晩警堂韻二首)>는 그가 우암의 문하에서 공부를 했던 인연으로 우암이 만경당 이라는 당호를 내려 주었는데, 그 당호를 소재로 한 것이다. 첫째 수는 반평생 편안히 지내다가 공자가 천명을 알았다는 50의 나이가 되어, 자기의 게으름을 자책하고 있는 시요, 둘째 수는 자기 자신에게서 모든 것을 구하려는 유학적인 자성을 보인 시다.
<경차우암선생운(敬次尤菴先生韻)>은 우암이 복상문제로, 허적등의 모함을 입어 덕원으로 귀양가 있을 때, 나라에 대한 염려와 스승의 고생됨을 걱정하여 읊은 시이다. 같은 내용과 비슷한 분위기의 시로<次尤菴韻二首>가 있다. 이것은 아마 우암이 제주도로 이배(移配)되었을 때를 내용으로 해서 쓴 시로 짐작된다.
3. 한시문 발췌문번역(拔萃文飜譯)
晩警堂韻二首 만경당에서[2수]
半世優遊苦此身 반평생 편안히 지냈던 일 이몸 괴롭게 하니,
如今忽覺自傷神 이제 홀연 저절로 마음 슬퍼짐을 알 듯도 하네.
嗟五十知天命 아아, 공자는 나이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 했으니,
大聖元來有幾人 그러한 큰 성인 원래 몇 사람이나 있었는가?
萬物皆存我一身 만물이 모두 내 한몸에 있으니,
外求何必費精神 밖에서 구하려고 어찌 꼭 정신을 허비하리오.
各循日月當行事 각각 이 순리(日月)를 쫓아 마땅히 일을 행하나니,
大道昭昭不遠人 큰 도(道)는 밝고 밝아 사람에게서 멀지 않네.
敬次尤菴先生韻二首* 삼가 우암선생 시운을 따라 지음[2수]
剝盡諸陽勢奈何 박괘, 양이 다 없어져 가니 이 형세 어쩌랴.**
一身榮辱卽無嗟 한 몸의 영욕을 이제 한탄할 수만은 없네.
訴憂只在邦家事 염려되는 것은 다만 나라의 일뿐인데,
自古亂因受誣多 예로부터 어지러움으로 인해 무고당하는 일이 많았다네.
白首孤臣負大何 늙고 외로운 신하 큰 짐을 어찌 하랴?
風 雪虐兩堪嗟 찬 바람 눈보라 둘 다 견디기 어려운 것을.
逢君試問江南事 선생님을 만나 강남에서 즐겁게 지냈던 일 묻고 싶은데,
柳綠梅殘草色多 버들잎 푸르고 매화꽃은 지니 풀빛이 짙어 지네.
▒ 상세설명
* 우암(尤菴) ; 송시열(宋時烈,1607-1689), 학자, 노론(老論)의 영수, 자는 영보(英甫), 호는 우암(尤菴), 김장생, 김집의 문인, 봉림대군의 사부
** 박괘(剝卦) ; 64괘의 하나로 곤(坤:땅을 뜻함)은 아래 간(艮:산을 뜻함)은 위에 있음
和趙子直相愚次溪堂韻二首* 조상우에 화답하면서 계당의 시운에 따라
壁間淸律勝琅 벽 위를 스쳐가는 노래소리 옥을 굴리는 소리보다 아름다워라.
吟罷依然對面看 노래소리 마치고 의연히 얼굴을 대하여 바라보네.
此日殘花尤可賞 오늘로 꽃지는 모습이 더욱 아름다우니,
願君母惜一番還 그대여, 한번 돌아가게 됨을 슬퍼하지 말세나.
幾作凡踵此地遊 그대 좇아 여기서 노닌지 그 몇 번이나 되었던가?
洗心間步興悠悠 마음 씻고 한가이 걸으니 기쁨이 끝이 없네.
溪邊藉草論懷處 시내삭에 풀자리는 마음을 나누었던 곳.
赤葉飛來覺暮秋 단풍잎 날리니 늦가을이 되었나 보네.
▒ 상세설명
*조상우(趙相愚,1640~1718) 문신, 자는 자직(子直). 호는 동강(東岡)
趙子直兼呈溪堂 조상우[子直은 상우의 字]께 편지를 하면서 계당에 대해 씀
却來高臥碧溪流 물러나 푸른 개울가에 편히 쉬니,
非爲南山林壑幽 남산의 숲속 골짜기의 그윽함 이 아닌가?
世路紛冗無樂處 세상은 어지러워 마음둘 곳 없으니,
試當深入秘 秋 신비한 가을의 자취따라 깊이 들어가 보려네.
示楚地高姓人 나라 땅에서 고씨 성의 사람을 보고
君姓爲高我亦同 그대의 성은 고씨요, 나도 또한 고씨이니,
本貫雖異喜無窮 본관은 비록 다르나 기쁘기 끝이 없네.
相逢未洽還相別 만난 정 다하지 못했는데, 또한 서로 이별이라,
此後難期音信通 이후에 만날 기약하기 어려우니 서신연락이나 잊지 말세.
過黃灘述懷 황탄을 지나며 회포를 읊다
雪中蕭寺眼俱靑 눈 내리는 쓸쓸한 절에서 마주하는 눈빛은 푸른데,
亂舞狂歌酒未醒 멋대로 춤추고 노래하니 술이 깨지 않았는가?
昔年曾有玆山會 지난해 일찍이 이 산에서 만났더니,
今日尋思涕自零 오늘, 이 생각 저 생각에 눈물 저절로 흐르네.
和景美秋日吟四首* 황경미의 <추일>시에 답하여
階邊寒菊傲霜開 충계 옆에 한국, 찬 서리에도 오만하게 피었는데,
風送淸香入酒杯 바람이 그 맑은 향기를 술잔으로 보내는 듯.
老夫若得長無事 이 몸이 이것을 얻는다면 오래도록 무사할 것 같은데,
黃白花時歲一來 희고 누런 꽃 일년 두고 한번만 필 뿐이니.
在世心無一樂事 세상에 살면서 마음에 즐거운 일 하나도 없더
暮年千慮與時新 늙어 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자주 일어나네.
莫言灘老耽花酒 황탄노인이 꽃과 술에 탐닉 하였다 하지 마소.
强飮銷愁苦眉頻 술을 마셔 근심 잊고 미간의 주름 펴 보네.
風動黃花香入來 바람이 황국을 흔들어 그 향기 퍼져오니,
病軀扶起却含杯 병든 몸 부추기어 일으켜 술잔을 멈추네.
愁邊更得人間興 근심속에 한편으론 인간의 흥취 얻으니,
自此悲懷暫借開 이로부턴 슬픈 생각 잠시 빌어 없애보려네.
可惜玄玄造化兒 신묘하게 자라던 아이 사랑할 만하더니,
如何便我 成絲 어째서 나로 하여금 구렛나룻 성성하게 하는가?
子夏喪明埋於理** 자하가 자식 잃고 실명함은 사리에 어두움이니,
冥頑此漢己知知 이 사나이 우매함도 몸소 알만 하도다.
▒ 상세설명
*경미(景美) ; 황진, 선조 때 문신, 자는 경미, 호는 서담
*자하상명(子夏喪明) ; 자하(子夏)가 자식을 잃고 그 슬픔 때문에 실명한데서 유래된 말로 자식을 읽은 것을 뜻함.
偶吟二首 우연히 읊다
但願長生與富貴 단지 장생과 부귀를 원할 뿐이니,
何求聞達世人譽 어찌 현달해 세상 사람들의 칭송을 얻으려 하겠는가?
能知不 都無事 자기를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으면 모두 평화로울지니,
高臥寒齊萬慮虛 고요한 서재에 누워 모든 생각을 비우네.
平生拙直任人嗤 평생 우직하게 살아 아첨꾼들의 우스객거리가 되니,
心事如今果執知 지금같은 심정을 과연 누가 알 것인가?
不 群英低眼看 많은 영웅들 두려워하지 않고, 눈깔아 바라보고,
自慙才薄負明時 스스로 재주 없음을 부끄럽게 여기며 밝은 세상에 의지 하려네.
次風詠亭韻 풍영정 시운에 따라
閒臥高亭志可休 높은 정자에 한가히 누우니 마음 가히 쉴 만하고,
世間塵念百無愁 세간에 속된 생각과 백 가지 수심도 없어지네.
微風獨飮 酌 산들바람속 홀로 노자작 술을 마시니,
細雨依迷鸚鵡洲 이슬비에 아련한 모습, 앵무주 아닌가 의심해 보네.
江水山雲情不變 강물과 산의 구름 정겨움 변함이 없으니,
蒼松翠竹色長留 푸른 솔 푸른 대숲의 의연한 색 오래도록 간직하네.
可憐人事隋時異 가련한 세상 인심 때에 따라 달라지는데,
身後芳名萬萬秋 죽은 후 꽃다운 이름들 만세가 지나도록 전해질까?
登月出山次前人韻 월출산에 올라서 앞 사람의 시운에 따라
鉢繡爲裝石作蓬 바루에 수놓아 엎어 꾸민 듯한 바위가 봉우리 이루니,
九秋光景屬斯中 가을의 아름다운 경치 이 산중에 다 모였네.
半生來往玆山下 반평생 이 산 아래만 오고 가고 했더니,
今日登臨萬念空 오늘 산꼭대기에 올라보니 온갖 잡념 없어지네.
平山賞梅竹爲賦一絶 평산에서 매화와 대를 보고 지음
雪裏寒 庭上梅 눈보라 속에 꽃봉오리 연 정원의 매화,
淸 風味亦奇材 맑고 여윈 듯한 풍미 또한 걸출한 자품이네.
靑靑最愛池邊竹 푸르고 푸른 연못가의 대나무 가장 사랑하노니,
四節從來一色裁 사계절 지나도록 내내 변함없는 모습이네.
次尤丈韻二首* 우암어른의 시운에 따라
却把深誠直瀉眞 깊은 성충, 곧이 곧대로 진실을 토로하려 했더니,
如何天怒速如神 어인 일로 임금님의 노하심이 이같이 빠르신가?
因玆遺札登龍案 이로 인해 임금께 올릴 서찰 접어 두고,
擡眼長安望喜人 눈을 들어 서울을 보며 고운 님 생각하네.
海上寒風襲客衣 바다 위의 찬 바람 나그네의 옷자락을 파고 드는데,
此中行色涕堪揮 그중에 나그네의 모습 눈물을 자아내게 하네.
蒼溟萬里波濤險 푸른 바다 멀고멀고 파도는 험한데,
至祝檣帆好好歸 마음깊이 축원함은 돛대 높이 하고 무사히 돌아오소서.
▒ 상세설명
*우장(尤丈) ; 우암 송시열을 가리킴.
蓮珠亭次板上韻 연주정에서 액자의 시운에 따라
秋晩湖山綵繡形 늦가을 산과 호수에 비친 비단같은 모습에,
探間遊子暫時寧 탐승하던 나그네는 잠시 편안함을 느끼네.
無風此日波心精 한 점 바람도 없는 오늘은 파도마저 조용하니,
峰影分明倒壓亭 산봉우리의 그리자 분명히 정자앞에 거꾸로 엎드린 듯.
贈溪堂主人 계당 주인에게 지어 줌
流水山中意 산중을 흐르는 물의 뜻은,
浮雲世外情 뜬 구름같은 이 세상과는 다른 정취라.
夜深群動息 밤이 깊어 모든 짐승들 쉬니,
孤月更分明 외로운 달이 더욱 밝더라.
次柳敎官翠香堂韻 유교관의 취향당 시운에 따라
策到冠山阿母宮 재촉하여 관산의 아모궁에 다달아 보니,
一連滄海四望通 한결같이 바다로 이어져 사방으로 통해 있네.
樓堂夜浸千山月 누각은 밤이 깊어가고 산마다 다이 비추니.
松桂秋生萬壑風 소나무 계수나무에 가을 바람이 일어 수많은 골짜기로 불어 가네.
役役自浸行路客 힘겹게 걸으며 길가는 나그네된 것을 부끄러워하며,
間間却 主家翁 주인집 노인을 바라보며 부러워하기도 하네.
人間富貴皆如夢 인간의 부귀영화는 다 꿈과 같은 것,
逐日含杯是傑雄 날마다 술을 마시고 지내니 이것이 곧 영웅호걸일세.
敬次諸丈挾仙樓韻二首 삼가 여러 어른들의 협선루 시운에 따라[2수]
我愛蘇仙放達風* 나는 소동과를 좋아하여 바람처럼 얽매이지 않고 살아왔더니,
來尋赤壁福川東** 오늘은 복천의 동쪽 적벽을 찾아 왔네.
平生逸樂今宵最 평생 놀고 즐긴 중에 오늘밤이 가장 즐거우니,
脫俗襟期付此中 세속을 벗어난 깊은 속마음을 여기서 노는 데에 붙이노라.
抱月飛仙赤壁前 적벽 앞에서 달을 끌어 안고 신선처럼 나는 듯,
遙遊淸興暮秋邊 늦가을의 맑은 홍취를 즐기네.
古人一語均爲賦 소동과가 단숨에 훌륭한 적벽부를 지었다고 하니,
今我具成詩數篇 지금 나도 시 몇 편을 다듬어 지어보네.
▒ 상세설명
* 소선(蘇仙) ; 소식, 중국 북송때의 문인. 호는 동파, 아 버지 소순, 동생 소철과 더불어 삼소라고 불림.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이며 서화에도 능하였음. 저서에 <적벽부>,「동파전집」등이 있음.
*적벽(赤壁) ; 원래는 중국 호북성 황강현에 있는 명승지로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었던 곳인데, 여기서는 화순 동복의 적벽을 가리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