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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문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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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부윤(髙府尹)선생의 벼슬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0-01-23 19:29
조회
2619
조선시대에 접어들면서 삼읍(三邑)에는 향교가 하나씩 세워졌다.  그때마다 향교마다 글 읽는 소리가 높아갔다.  그 중 정의향교(旌義鄕校)에서 제주고씨 한 사람이 벼슬의 꿈을 안고 열심히 글을 읽고 있었다.  고씨는 문장이 뛰어났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과거를 볼 때마다 낙방이었다.  그것은 제주 섬사람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어느 해였다.  그 해에도 조정에서는 인재들을 등용하기 위하여 방방곡곡에 방(榜文)을 붙였다.  정의향교에서 글을 익힌 고씨는 부푼 꿈을 안고 한양으로 향했다.  이번이 열번째 보는 과거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낙제였고, 낙심하여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바로 그때였다.  한양에서는 천둥과 벼락이 내리치면서 폭우가 쏟아졌다.  그 때 장안에서 장사하던 한 상인이 벼락에 맞아 죽고 말았다.  이상한 일이었다.  벼락을 맞고 죽은 시신의 등대기에 새겨진 글씨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글이었다.

방구팔삼월(方口八三月).

임금은 큰 변이라고 하면서 그 글을 해석해 올리도록 명령하기에 이르렀다.  조정의 관리들이 모여 앉아 그 글을 해석하려고 애써봤지만 어느 누구도 제대로 해석할 수가 없었다.
급기야 조정에서는 방방곡곡에 흩어져 있는 여러 문무백관들을 불러다 놓고 그 뜻을 해석해 보려고 안간힘을 쓰기에 이르렀지만, 모두 허사였다.  어느 누구도 그 뜻을 해석할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선비가 불쑥 나타나더니 임금님께 다음과 같이 아뢰는 것이었다.

"이름은 확실히 모르겠사오나, 아마 제주도에서 과거보러 올라 온 고씨만은 그 내용을 알것으로 믿사옵니다."
"어떤 사람인고?"
임금의 목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듯 궁궐을 울렸다.
"그 사람은 금년 과거를 보러 한양에 올라왔었으나 낙방하여 곧 제주로 내려가는 줄로 아옵니다."
"지금쯤 어디에 있을고?"
"아마 인천 포구에서 배를 기다리는 줄로 아옵니다."
"어서 가서 그 사람을 데려 오도록 하여라."

뛰어가서 보니, 제주고씨는 포구머리에서 제주로 떠나려는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신하들로부터 임금의 뜻을 전해 들은 제주고씨는 신하들의 뒤를 쫒아 궁궐로  향했다.
궁궐에 들어선 고씨는 임금 앞에 엎드렸다.  당장 임금의 목소리가 궁궐 안을 진동하기 시작했다.

"그대가 금번 과거에 낙방하여 제주도로 향하던 중 나의 부름을 받고 되돌아온 제주고씬가?"
"그러하옵니다.'
"그대 문장 해석이 남다른 바가 있다고 하던데, 어디 한번 이 글을 해석해 보려무나."

제주고씨는 천천히 벼락 맞고 쓰러진 시신 앞으로 다가갔다.  모두들 숨소리를 죽인 채 바라보고만 있었다.  물끄러미 시신 등대기에 새겨진 글씨를 살피고 있던 제주고씨는 자신의 등뒤에 꽂아뒀던 담뱃대를 빼어들고는 '바로 이렇습니다!'고 크게 외치는 것이었다.  주위에 둘러 선채 바라보고만 있었던 눈동자들이 모두 휘둥그래졌다.

고씨는 천천히 '方'자 가운데에다 담뱃대를 턱 놓았다.  바로 '市'자로 둔갑되었다.  다시 '口'자에다 담뱃대를 옮겨 놓으니 이내 '中'자로 바뀌었다.  '八'자에다 놓으니 '小'자로 변했다.  '三'자에다 놓으니 '斗'자가 되었다.  '月'자에다 놓으니 '用'자가 되었다.

이 뜻은 바로 벼락맞아 죽은 사람이 생전에 시장 가운데서(市中) 쌀을 팔 때마다 사는 사람 눈을 속이기 위하여 작은 되(小斗)를 썼기(用) 때문에 죄값을 받고 벼락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다.  임금은 크게 감복했다.

"제주고씨야 말로 인재로다.  이렇게 훌륭한 인재가 과거를 치를 때마다 낙방했다니…"
임금께서는 바로 그 자리에서 제주고씨에게 부윤(府尹) 벼슬을 하사했다.  그후로 그 사람을 고부윤(髙府尹)이라 부르게 되었고, 제주도 여러 선비들에게도 과거에 합격하기만 하면 벼슬자리를 내려주게 되었다고 한다.  제주고씨 덕으로 제주도도 변방이라는 서러움에서 벗어나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