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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지(瀛州誌)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0-05-20 21:33
조회
3788
[정의] 고려 후기 내지 조선 전기에 간행된 것으로 추정되는 제주의 삼성신화(三姓神話)가 수록된 문헌.

[개설]
『영주지(瀛洲誌)』의 저자는 미상이나 유창한 문장으로 보아 한문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의 저작임을 알 수 있으며 사서의 기록과 부합되는 구체적인 사실도 있기 때문에 『영주지』가 다만 전설을 들어서 기술하였다고만 볼 수는 없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피의(皮衣) 육식(肉食)과 혈거(穴居)의 원시생활, 신라·백제·고려와의 통조(通朝) 수작(受爵) 등이 그것이다. 전설적인 것이 있다 하여도 전연 뿌리가 없는 전설은 있을 수 없다. 전설에 따라서는 혹 과장되고 와전되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나 그 속의 핵심 부분은 원형을 간직하여 전해지기 때문에 선인들의 생활사를 살피는 데 참고 자료가 되는 것이다.

[편찬/발간경위]
『영주지』는 단간본이 아니라 1416년(태종 32) 정이오(鄭以吾)가 저술한 『성주고씨전(星主髙氏傳)』, 1450년(세종 32) 고득종(髙得宗)이 저술한 「서세문(序世文)」, 기타 『고씨세보(髙氏世譜)』 등과 서로 이어져 있다. 이것으로 미루어 보아 『영주지』의 간행 연대는 고려 후기 내지 조선 전기로 추정된다.

[서지적 상황]
『영주지』 계열로는 고득종의 「서세문」, 『고씨세보』의 「영주지(瀛洲誌)」, 『장흥고씨가승(長興髙氏家乘)』의 「영주지(瀛洲誌)」 등이 있다.

장서각에 소장되어 있는 『영주지』는 『제주고씨족보(濟州髙氏族譜)』의 서문집(序文集)으로 고종 연간인 1864~1900년 사이 발행된 것으로 추정되며 사본(寫本) 형태이다.

[형태]
『영주지』는 ‘영주태초무인물(瀛洲太初無人物)’로 시작되어 ‘미유서사왕국자 지유시사언(未有筮仕王國者 至維始仕焉)’으로 끝나는 총 626자의 기록으로 되어 있다.

[구성/내용]
『영주지』는 탐라의 개벽 설화를 시작으로 삼성인의 삼공주와의 결혼 정착 생활과 농경 사회의 형성, 고을라의 15세손 고후(髙厚)·고청(髙淸)·고계(髙季) 삼형제의 신라 입조, 인간 사회를 이루어 900년 뒤의 고씨 위군(爲君)과 신라의 번국(藩國) 관계를 적고 있다.

고후의 12세손 고담(髙聃)의 백제 복사(服事), 고담의 17세손 고소(髙昭)의 동성왕에 대한 걸죄신사(乞罪臣事), 938년(고려 태조 21) 탐라국왕 고자견의 태자 고말로의 고려 입조와 성주 왕자 수작(受爵) 및 고유의 고려조 시사(始仕) 등이 그 주요 내용이다. 『영주지』 이후 간행된 문헌들의 탐라 개벽 신화 등은 모두 『영주지』를 인용하거나 다소 고쳐 기록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영주지』는 제주도 역사 자료로서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문헌이다. 제주도의 개벽 설화와 조선 초기까지 천 수백 년의 역사적 사실들이 배경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문헌이 부족한 제주도 고대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  박용후, 「영주지에 대한 고찰」(『제주도사연구』창간호, 1991)
•  김천형 편저, 『탐라사료문헌집』(디딤돌, 2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