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약해(髙若海) 조선 초기의 문신, 형조참판을 지냄.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6:21
조회
234
1377(우왕 3)∼1443(세종 25). 조선 초기의 문신. 자는 순평(順平).
1393년(태조 2)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태종초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유교가례를 준수한 일과
어머니에의 효행으로 사간원의 천거를 받아 공안부주부(恭安府注簿)에 제수되었다.
1418년(태종 18)형조정랑으로 있을 때 무녀(巫女)치죄에 대한 잘못으로 외방에 부처(付處), 세종초에 복직되었다.
그뒤 장령 경창부소윤(慶昌府少尹)을 거쳐 예조참의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한성부윤 형조참판 대사헌을 지냈다.
1434년(세종 16)장령 민신(閔伸)과의 상핵사건(相劾事件)으로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황주목사 인수부윤(仁壽府尹) 형조참판을 지냈다.
1442년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돌아가셨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
1393년(태조 2) 성균시(成均試)에 합격하였고, 태종초 아버지의 상을 당하여 유교가례를 준수한 일과
어머니에의 효행으로 사간원의 천거를 받아 공안부주부(恭安府注簿)에 제수되었다.
1418년(태종 18)형조정랑으로 있을 때 무녀(巫女)치죄에 대한 잘못으로 외방에 부처(付處), 세종초에 복직되었다.
그뒤 장령 경창부소윤(慶昌府少尹)을 거쳐 예조참의 이조참의 충청도관찰사 한성부윤 형조참판 대사헌을 지냈다.
1434년(세종 16)장령 민신(閔伸)과의 상핵사건(相劾事件)으로 파직되었으나 곧 복직되어 황주목사 인수부윤(仁壽府尹) 형조참판을 지냈다.
1442년 개성부유수로 나갔다가 임지에서 돌아가셨다. 시호는 정혜(貞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