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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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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득(髙勝得) 독립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8:23
조회
59

미상~1922. 2. 17

1922년 국내진공작전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1920년 일본군의 만주출병에도 굴하지 않고 재기한 남북 만주 각지의 독립군들은 1921년 이후 새로운 전략을 필요로 하였다. 왜냐하면 종전처럼 각 지역별로 분산되고 그 이념마저도 분리되어서는 효과적인 독립전쟁을 수행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움직임 속에서 1922년 2월에 이르러 남만주지역에서 활동하던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를 비롯한 대한독립단(大韓獨立團)・벽창의용대(碧昌義勇隊)・광복군총영(光復軍總營)・광한단(光韓團)・보합단(輔合團) 등 각 군단의 대표들이 관전현(寬甸縣)에 모여 남만통일회의(南滿統一會議)를 개최하고 회의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처럼 독립운동단체들의 독립운동의 활성화를 위하여 노력하고 있던 시기인 1922년 2월 14일, 고승득은 분대장(分隊長)으로서, 검찰(檢察) 김득하(金得河)・정기순(鄭基淳) 외 6명과 함께 평북 초산군(楚山郡) 성서면(城西面) 옹암동(瓮岩洞) 구장집 외 2개소를 습격하는 등 국내진격작전을 활발히 전개하였다.

이러한 고승득의 활동은 독립운동단체들이 대한통군부(大韓統軍府)를 조직하려고 하는 등 단체의 통합운동에 적극 나서고 있는 시점에서 이루어진 활동으로서 주목된다. 이에 놀란 일제는 압록강을 건너 관전현까지 집요하게 추격하여, 결국 고승득은 동년 2월 17일 동현 하루하(下漏下)에서 일경과 교전하다 동지 김득하・정기순과 함께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상세설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暑) : 1919년 5월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단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