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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라(耽羅)의 교역품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09-07-11 00:38
조회
2886
탐라에서 수출한 것은 먼저 가(珂:어패류로 만든 말 장식품)를 들 수 있다.

이는 고구려 문자왕이 중국 위(魏)에 사신을 보냈을 때 고구려를 통해 중국에 방물로 바쳐지던 탐라 특산 가(珂)가 백제로 인해 조공하지 못함을 설명하는 사실에서 확인된다.

이 밖에 일본서기에 의하면 백제 멸망 직후인 661년 일본과 교류를 통해 탐라복(耽羅鰒:전복), 탐라방보(말린 고기) 등을 교역한 것으로 확인된다.

또한 문종 6년(1052) "삼사(三司:재정 담당 부서)에서 아뢰기를 탐라에서 해마다 바치는 귤을 1백포(包)로 고치고 길이 법으로 삼으소서 하니 이에 따랐다"는 기록과 1053년 2월 탐라왕자 수운나(殊雲那)가 그의 아들 배융교위(培戎校尉) 고물(古物)을 보내어 우황, 우각, 우피, 나육, 비자, 해조, 구갑 등을 바쳤다는 기록 등이 있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아 탐라의 수출품은 해산물, 농산물, 축산물 등 1차 산업에서 생산된 특산물이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당시 탐라의 대외수입품들은 어떤 것들이 중심이 되었을까.

먼저 「일본서기」에 의하면 661년 탐라는 해산물을 바치고 도끼 26자루, 낫 64자루, 도자 62매 등을 받아갔다고 한다.또한 이제현의 「익재난고」에는 「전라지역에서 자기와 쌀을 파는 상인이 때때로 왔으나 숫자는 적었다」라는 기록이 있다.

여기에서 보듯 탐라에서 수입하는 교역품으로는 제주도에서 산출되지 않는 철을 비롯한 생활필수품이었다.

특히 철은 귀한 물품으로 인식된 것으로 생각되는데, 이것은 제주도가 화산이 폭발한 현무암지대로서 지질 조건 때문에 철광석 원료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도기와 자기의 원료인 점토가 충분하지 않아 이들이 생산될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탐라는 철제 생활도구, 구리제품, 도자기, 도기와 쌀, 소금, 약재, 비단 등을 교역을 통해 들여왔다.

이러한 사실은 곽지리, 고내리유적, 용담동 제사유적, 신창리 앞바다 유적 등에서 일부 확인된다.


("제주의 역사와 문화", 국립제주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