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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을빛낸인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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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희(髙昌熙) 독립운동가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5 08:33
조회
136

1887~미상. 평남 평양(平壤) 출신.

1919년 정찬도(鄭燦道)・백기환(白基煥) 등과 함께 서간도 지역으로 건너가 대한독립임시군정부(大韓獨立臨時軍政府)로부터 사령서(辭令書)를 받고 귀국하여 군자금 모집에 종사하였다. 그 후 1920년 중국 유하현(柳河縣)의 서로군정서(西路軍政暑) 총재 이상룡(李相龍)으로부터 군자금 모집 및 한인들의 항일민족의식을 고취시키라는 명령을 받고 귀국한 그는 이근수(李根洙)를 만나 다이나마이트를 입수하여 일본 관청 폭파와 친일관리 처단을 논의한 후 동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비밀결사 모험청년단(冒險靑年團)을 조직하였다.

그리하여 1920년 5월 8일 정찬도 등 동지들과 함께 평양 죽전리(竹典里)의 부호 김남호로부터 군자금 모집을 시도하다가 5월 9일 피체(被逮)되었다.

1920년 10월 27일 평양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및 강도, 총포화약류취체령 시행규칙 위반으로 징역 10년을 받고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2월 16일 평양복심법원과 1921년 1월 29일 고등법원에서 각각 기각되어 형이 확정되었다.

이에 따라 옥고를 치르던 그는 1921년 3월 독립만세시위 2주년을 맞이하여 옥중에서 만세를 고창하기도 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상세설명
*서로군정서(西路軍政暑) : 1919년 5월 만주에서 조직된 무장독립운동단체
*피체(被逮) : 남에게 붙잡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