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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과방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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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과(雜科)[技術官]제도(制度)

작성자
제주고씨
작성일
2021-02-13 20:05
조회
577
잡과(雜科)[技術官] 제도(制度)

조선시대의 과거(科擧)는 문과(文科), 무과(武科), 생원(生員), 진사(進士), 잡과(雜科)로 구분되어 있는데 이 중 잡과는 기술관(技術官)을 선발하기 위한 시험이다.

문치주의(支治主義)와 유교적(儒敎的)인 산업관에 의해 기술을 천시하는 경향이 있던 조선왕조에서 기술관은 ·무관보다 사회적인 지위가 낮았다.

조선시대의 잡학은 역학(譯學), 의학(醫學), 운학(雲學), 산학(算學), 율학(律學), 화학(畵學), 도학(道學), 악학(樂學)등이 있었으며 이 중 과거 시험은 역과(譯科), 의과(醫科), 운과(雲科), 율과(律科)뿐이며 나머지는 취재(取才)만 있었다.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잡과에는 문 ·무과와 마찬가지로 3년에 한번씩실시되는 식년시(式年試)와 국가에 경사가 있을때 특설되는 증광시(增廣試)가있었다. 잡과는 초시(初試), 복시(覆試)로 운영되며 합격자에게 백패(白練)가 주어지고 방목(榜目)이 작성되었다.

그러나 국가에 일이 있거나 흉년이 드는 경우에는 퇴행(退行)하여 그 다음해에 설행 (設行)하였다. 조선시대 잡과는 태조원년 입관보이법(入官補吏法)이 제정 되었을 때 이조(吏普)가 주관하였으며 세종 원년에는 역과(譯科)에 15인과 그의 각과별로 9인씩선발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따라서 잡과는 조선 초부터 실시되어 왔음을 알수 있으나 현재 전해지는 잡과방목(雜科榜目)에는 조선 초 및 중기에 관한 기록이 누락되거나 불충분하여 제대로 파악할 수 없다. 실제로 방목에 나타나는 기록중 가장 이른 것은 1498년(연산 4)의 역과(譯科)와 의과(醫科)가 있으나 그 후 1531년(중종 26)까지 34년 간은 환전히 누락되어 있으며 이러한 잡과제도는 운과(雲科)와 율과(律科)에서 더욱 심하여 향후 고증보완이 있어야 할 것이다.

역과는 한학(漢學 63%), 왜학(倭學 12%), 청학(淸學 11%), 몽학(蒙學 9%),여진학(女眞學 비율미상), 기타 5%이며, 운과는 천문학(天支學 53%), 명과학(命課學 23.5%), 지리학(地理學 13.5%) 미상 9.7%등 전공분야로 구분되고 있다. (註 : 숫자는 전공별 정원의 비율임)합격자의 연령층은 10대부터 70대까지 나타나 있으나 대부분 17세부터 23세까지가 80%이상 차지하고 있다.

역과의 1등은 종 7품,2등은 종 8품,3등은 종 9품계를 주었으며 그외 의과,운과,율과는 역과보다 1품계씩 낮게 주었다. 잡과 합격자들이 많이 지낸 관직으로는 정(正), 첨정(僉正), 별제(別提) 주부(主簿), 교수(敎授), 직장(直長), 봉사(奉事), 훈도(訓導)로 나타나며 실직(實職)보다 체아직(遞兒職)에 많은 분포를 보이고 있다. 한품거관법(限品去官法)에 의해 기술관은 정 3품 당하관(堂下官)까지 올라갈수 있으며 그외 율관(律官) 등은 종 6품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 방목에 기재된 본관(本貫)은 아주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사마방목(司馬榜目)에는 본관과 함께 거주지(居住地)도 기재되어 있지만 잡과방목(雜科榜目)에는 거주지는 기재되어 있지 많고 본관만 기재되어 있다.

성씨(姓氏)별 잡과 합격자는 전주이씨(全州李氏 452명), 경주최씨(慶州崔氏372명), 남양홍씨(南陽洪氏 268명), 천영현씨(川寧玄氏 207명), 경주김씨(慶州金氏 196명), 청주한씨(淸州韓氏 183명)등 순으로 1백명 이상 합격한 성씨는16개에 달하며 전체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전주이씨(全州李氏)의 경우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양반 가문이면서 잡과에서도많은 인원을 배출하고 있는 것을 볼때 이들 가문을 일률적으로 양반보다 낮은 중인가문(中人家門)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잡과 방목에는 합격자 개인에 관한 사항뿐 아니라 부(父), 조부(祖父), 증조부(曾祖父), 외조부(外祖父), 장인(丈人)등 가족사항이 함께 기재되어 있는 것은볼때 집안간 대를 이어 세전(世傳)된 경우가 많았음을 알수 있다.

고씨(髙氏)합격자는 78명으로 180여 성씨중 27번째로 많으며 이중 45명은 전서공파 봉인계(典書公派 鳳仁系) 휘 익길(益吉 중시조 20세 : 경기 高陽郡, 楊州郡에 世居해 왔음)의 일문이 차지하고 있다. 고씨 합격자는 시험년대 순으로 명단을 발췌, 수록하였습니다.

(참고자료 : 朝鮮時代 雜科合格者 總覽,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90年刊)